치유의 숲

치유의 숲~숲에서 나는 냄새

수풀7 2021. 5. 19. 12:13

마음의 여유를 찾으러, 그림에 문외한인 나도 가끔은 전람회를 가곤 합니다. 느린 걸음으로 바라보는 그림에서 뭔지 모르는 평온함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겸재 정선의 마앵청상도를 감상하며, 그림 속의 노인의 미소와 봄기운이 어우러진 여백이 돋보였습니다. 선과 색이 화려한 서양화에 견주어 동양화의 간결한 곡선과 여백이 탁월했지요. 뭔가를 더하는 욕심보다 뺌과 비움의 여유가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숲을 채우는 것들

우리의 삶에도 동양화의 여백이 필요하듯 나무로 가득 차있는 숲은 빈 공간이 많습니다. 숲은 빈 공간을 무엇으로 채울까요? 햇빛이 그 공간을 가득 채우기도 하지만, 숲은 지난가을에 떨어진 낙엽과 이파리 부스러기가 썩은 흙냄새와 숲 바닥에서 올라오는 풋풋한 풀냄새로 자신의 여백을 채웁니다.

입하의 절기를 맞이하는 솔숲은 송홧가루와 옅은 송진 냄새가 온몸을 휘감습니다. 피곤에 찌든 영혼은 청아한 솔 냄새로 씻기어집니다.. 스펀지처럼 숲 바닥에 쌓인 흙은 바늘잎나무와 넓은잎나무의 냄새가 다르듯 흙의 냄새도 다릅니다. 소나무 숲은 솔향기로 감미롭게 상긋하고, 참나무 숲은 텁텁하고 구수합니다. 숲이 얼마나 오래되었는가에 따라 숲 냄새도 달라집니다. 새로 일구어진 숲은 신선하고 상큼하지만, 오래된 숲은 수백 년의 세월 동안 싹을 틔우고 낙엽을 떨어뜨려 세월의 두께만큼 복잡하고 오묘한 냄새를 풍깁니다.

나무의 냄새

생물학자 린네는 식물이 내놓는 냄새의 느낌을 유쾌한 순서에 따라 방향성 냄새, 향기로운 냄새, 머스크 향의 사향 냄새, 마늘과 같은 톡 쏘는 냄새, 땀 냄새 같은 고약한 냄새, 역겨운 냄새로 나누었습니다.
소나무와 전나무, 삼나무 숲은 피톤치드라 부르는 방향성 냄새로 가득합니다. 이팝나무, 아카시나무, 수수꽃다리는 향기로운 냄새로 우리를 이끕니다. 밤나무는 남성의 정자 냄새,, 산사나무는 여성의 야릇한 머스크 향을 풍깁니다.

삼나무에서 나오는 피톤치드를 마시면 사람의 몸은 이완된다는 연구보고가 있습니다. 또 편백나무에서도 삼나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전두전야의 활동이 진정되고 ‘수축기 혈압’도 떨어졌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생리기능이 선천적으로 자연에 잘 적응하도록 되어 있다는 흔적입니다. 아마 고향의 냄새가 자연으로 향한 본성을 불러내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아로마테라피

현대사회가 초래한 자연과의 단절을 회복할 수 있는 숲 치유 요법으로 아로마테라피는 큰 의의가 있습니다. 삼림이 뿜어내는 향기 속에 산책하는 일은 자연으로의 회귀를 재촉하는 동시에, 생명과 죽음의 순환을 느끼면서 참다운 나를 찾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가미야마(神仙, 1983)는 삼림이 방출하는 휘발성 물질인 테르펜 화합물이 피로회복에 효과가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특히 코로 들어온 냄새 자극은 대뇌피질에서 그리운 냄새라는 특별한 느낌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또한 냄새 자극은 코끝의 후각 망울(olfactory bulb)에서 대뇌변연계와 시상하부로 전해지고, 면역 중추를 활성화시킴으로써 항스트레스 작용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자연에 대한 감각을 잃어가는 현대인에게 매우 효과적인 치유요법임이 증명되기도 했습니다.

코로 듣는 숲

아프리카의 원주민들은 코로 냄새를 맡는다고 하지 않고 코로 듣는다.’고 표현합니다. 후각 또한 청각 못지않게 자신의 내면으로 향하게 하는 뭔가가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알아차린 것 같습니다.
그들은 느긋하게 맡는 좋은 냄새를 신의 음식이라고 여깁니다. 그 냄새가 자신들의 마음을 신과 소통하게 만들어준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냄새에 관한 이런 의식은 밖으로 향했던 우리의 마음을 내면으로 이끌어줍니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냄새 맡는 것을 듣기라고 말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일 것입니다.

마음이 답답하고 힘든 것은, 내 마음에 욕심이 가득 찼기 때문은 아닐까요? 숲길을 걸으며 내 속의 것을 다 내려놓고 숲 냄새를 맡아보세요.. 그리고 천천히 나무에게 말을 걸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