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숲~숲에서 나는 소리
초여름 숲길을 걷다 보면 풀숲 사이로 들리는 작은 소리에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멈추어집니다.
강아지풀잎에 흐르는 물방울 소리,
늦깎이 움터지는 소리,
애기똥풀 씨방 벌어지는 소리,
단풍나무 물오르는 소리,
나뭇가지를 스치는 바람소리,
가지 사이로 나는 작은 새 날개 짓 소리,
졸음이 깃든 산사의 청아한 염불소리.
숲을 채우는 소리
좋은 사람들과 함께 숲길을 걷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지만, 가끔은 혼자 걷는 숲길이 또 다른 기쁨을 줄 때도 있습니다. 숲 언저리에서 만나는 앙증스러운 풀꽃들의 흔들림은 무료한 시선을 빼앗기 충분합니다. 걸음을 멈추고 오도카니 앉아 그 흔들림을 내려다보면 형언할 수 없는 짜릿한 선율이 몸을 감쌉니다. 마치 말을 걸 듯 다가오는 그 표정 속에 참 많은 사연이 있는듯합니다.
작은 풀꽃의 소리에 귀기 우리는 것은 눈으로만 보는 즐거움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눈은 다른 대상에 대한 주관적이고 피상적인 관념을 가져다주지만, 듣는 행위는 그 대상에 대한 배려를 이끌어냅니다. 듣기 시작하면 대화가 되고 소통이 되지요. 들음은 상대에 대한 이해와 믿음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풀꽃의 말에 귀기 우리면,, 그들을 이해하게 되고, 그 표정이 다시 보이기 때문입니다. 낯설었던 표정이 따뜻하고 친근한 모습으로 바뀌어져 가면, 숲은 평화롭습니다. 나무도 덩달아 그렇습니다.
나무에게 말을 걸다
숲길을 걸으면 나무들은 아무런 대가 없이 지친 나를 기꺼이 받아줍니다. 숲 속의 나무에게 친근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내가 원할 때 언제든 걸음을 멈추고 나무에게 말을 걸거나, 나무가 나에게 말을 거는 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낯선 사람이 말을 걸어오거나,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 때 우리는 왠지 모르는 불편함을 느낍니다. 그 말속에는 서로의 목적하는 바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숲의 나무가 말을 걸어올 때나, 내가 말을 걸 때는 아무런 목적이 들어있지 않습니다.
환대(歡待)란 낯선 이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것, 그를 내 공간 안으로 들어오게 한다는 것, 그를 향한 경계를 거두어들이고 내 곁을 허락하는 것. 나무는 단지 나를 환대합니다. 그 환대의 말을 잘 들으려면 기다림의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나무의 말을 듣다
어느 시인은 삶의 일상에서 대상과 묵언의 대화를 나누는 즐거움을 ‘아름다움이고, 행복이고, 운명적인 만남’이라 말합니다. 그는 자신의 시어에서 “물푸레나무를 만났네, 지켜보고 있다네, 푸르게 키우고 있다네, 사랑법을 배웠네.”라고 말합니다.
나무는 말없이 내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입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성냄 없이 열심히 들어줍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고, 남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나무는 내가 힘들 때나 슬플 때, 어떤 이야기를 해도 가만히 들어줍니다.
나무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면 입이 무거운 이 친구에게 먼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잘 있었니. 친구야, 오랜만이야” 다정하게 나무의 마음도 물어보면서,, 나무를 포근하게 껴안아야 합니다. 내 말을 들어준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이지요. 나무가 나에게 어떤 영감을 주었을 때도 반드시 고마움을 표시합니다. 나무는 표현하지 않았을 뿐 다 보고 듣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느 날 문득 말없이 듣기만 하던 나무가 말을 걸어올 것입니다. 나무와 대화하는 것은 생각보다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나무와의 대화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어려워합니다. 하지만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내가 먼저 마음을 열어 나무에 다가가기만 하면 나무는 언제든 나에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나무와의 대화는 경계를 허무는 인간소외와의 결별입니다. 나무와 함께 이야기 나누는 것은 상처 입은 영혼을 치유하는 엄숙한 행위입니다. 더운 여름이 오기 전에 나무에게 조용히 말을 걸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