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 걷기~마코마나이 사쿠라야마 숲길에서
마코마나이 사쿠라야마 숲길은 초록세상입니다.
삿포로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과 함께 숲길을 걷는 것은 요즘 들어 가장 즐거운 일 중의 하나입니다.
언어가 서로 달라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숲의 아늑함을 함께 느끼며 걷다 보면 삶에서 무엇이 가장 즐거운 것인가를 서로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초여름 숲길에는 갖가지 풀꽃들이 우리를 반깁니다.
개망초, 파리풀, 짚신나물, 이삭여뀌, 쥐꼬리망초, 숲 속 요정 수정난풀...
숲 속은 그야말로 여름 꽃 축제가 벌어집니다.
발걸음이 이시야마녹지를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뜨거운 햇살이 걷는 걸음을 점점 힘들게 만듭니다. 일행은 부채를 부치고, 손수건으로 흐르는 땀을 닦으며 힘들게 걷습니다. 이미 삿포로의 바깥 온도는 35℃를 넘었다는 보도를 들었습니다.
같이 걷는 사람들은 삿포로의 날씨가 이렇게 더운 경우는 드물었다고 푸념을 늘어놓습니다. 예전의 삿포로는 여름이 와도 30℃를 넘는 경우가 드물었는데, 이제는 날씨가 점점 더워져 ‘폭염’이 왔다고 야단들입니다.
폭염(暴炎, heatwave)은 비정상적인 고온 현상이 여러 날 지속되는 자연재해라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단순한 날씨 현상을 넘어서 우리 몸과 자연 생태계뿐 아니라 살림살이에 미치는 영향이 큽니다. 특히 온열환자 수는 최근 들어 급속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고 사망자 수도 늘어가고 있습니다. 인명피해 이외에도 60대 이상의 노인과 야외 노동자, 노숙자 등 사회적, 경제적 약자에게는 사회적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최신 IPCC의 연구는 폭염이 기후변화에 따른 날씨 정체 현상(대기 블로킹 현상)의 증가와 관련이 있다는 가설을 제시합니다. 서풍이 지배적인 중위도와 고위도에서 날씨의 흐름이 정상적으로 동진(東進)하는 것을 방해하고 한 지역에 오래 머무르게 되면, 생활 속에서 내보내는 온실가스로 인한 고위도 온도 증가로 지구온난화 현상이 일어납니다. 북극의 해빙 감소, 고위도 동토층의 온도 증가로 고위도와 저위도의 온도 차이가 줄어들면, 중위도 지역 제트 기류를 약화시킵니다. 약화된 제트 기류가 동서 방향으로 이리저리 움직이는 대규모 혼란으로 드디어 대기 블로킹 현상을 만들어 낸다는 가설입니다. 그뿐 아니라 여름철 에어컨, 차량에서 나오는 뜨거운 열기는 콘크리트 건물 외부의 기온을 치솟게 하는 ‘도시 열섬’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이론입니다(IPCC 2013).
또한 ‘열돔 현상’은 대기권과 성층권 사이에서 빠르게 움직이며 찬 공기와 따뜻한 공기를 섞어주는 제트기류가 약해졌을 때 대기권에 발달한 고기압이 정체해 '지구 지붕'과 같은 역할을 하면서 지열에 데워진 공기가 움직이지 못하는 현상을 말하기도 합니다. 특히 고기압이 발달한 지역에선 하강기류가 발생해 지상의 공기를 누르며 '단열 압축' 하기 때문에 기온이 더 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번 폭염도 특별히 심상치 않은 현상을 보입니다.
요즘 캐나다 서부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리턴 최고기온이 47.9℃까지 치솟았고, 미국 포틀랜드와 시애틀 기온도 각각 46.6℃, 42℃를 기록해 또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태평양 북서부와 캐나다에서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발생한 원인을 '지구 기온 2℃ 상승'이라고 보고 있으며, 크리스티 에비 워싱턴대 건강·세계환경센터 교수는 "이 온도는 작아 보여도 사람 몸에 큰 변화를 일으킨다."라고 이야기합니다. 현재 미국 오레곤주에서만 폭염 관련 사망자가 116명이라고 밝혔을 정도입니다.
울산과학기술원 이명인 교수는...
“폭염은 이제 자연재해를 떠나 사회재해로 대두되고 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일어난 폭염의 주요 원인 중 핵심은 ‘중위도 제트기류의 약화’다.”라고 했고,
영국 맨체스터대학교 글로벌개발연구소 요한 올데컵 교수는...
올해 세계기상기구(WMO)에서 발표한 ‘2020년 지구 기후 현황 자료’에서 2020년 지구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보다 최대 1.3도 상승했고, 기온 상승으로 시작된 가뭄, 홍수 등의 오랜 시간을 걸친 느린 폭력은 산림생태계를 현재 낭떠러지로 내모는 상황이라고 주장합니다. 또한 삼림 파괴로 인해 생물다양성을 감소시키고 에볼라 바이러스를 비롯해 사스, 에이즈 등 미지의 질병과 가까워질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파이낸셜타임스 보도에서도 “지구에 포유류, 조류 등에만 160만 종의 바이러스가 있고, 이 중 70만 종이 인수공통 전염병”이라고 할 정도로 숲 소실로 발생할 병원균 출현에 우려를 나타내었습니다.
숲은 ‘코로나19’와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오히려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며 마스크를 벗고 숲의 피톤치드를 흠뻑 마시면, 암울한 ‘코로나19’와 멀어져 우리의 환경이 더 빨리 나아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폭염 속이라도 숲을 걸으면 시원합니다. 숲의 나뭇잎이 햇빛을 받아 증산 작용을 하면서 둘레의 열을 빼앗아가고, 잎과 가지가 뜨거운 햇볕을 막아주어 도심보다 3~4℃ 혹은 10℃정도까지 기온을 내려주기 때문입니다.
사각사각...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는 폭염의 뜨거움을 식혀줄 것이고, 졸졸 흐르는 개울물에 발을 담그고 까맣게 익은 산뽕나무 열매를 따서 입에 넣으면 잊었던 숲의 기억이 되살아 날 것입니다.
오가와 선생님, 세노 할머니, 다테이시 할머니, 마에다 선생, 나카무라 선생, 미야노 아줌마... 그들이 왜 건강한 걸음을 할 수 있는지는 숲만이 알고 있습니다. 오늘도 삿포로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은 폭염 속에서도 홋카이도의 숲길을 시원하게 즐기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폭염으로, 코로나19로, 짜증의 스트레스로...
‘하루라는 숲속’에서 원치 않아도 어느새 돋아나는 우울의 이끼, 불안의 곰팡이, 교만의 넝쿨들에 둘러싸여 어두운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요?
숲으로 오세요!
어쩌면 작은 오솔길 언저리에 ‘위로의 숲길’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노랑나비가 날아왔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