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기행

숲기행~느릿하게 걷는 닭실마을

수풀7 2021. 8. 18. 12:49

- 경북 봉화군 유곡리 닭실마을, 전통한옥으로 구성되어 영남지방의 전형적인 집성촌으로 조선 중기 지리학자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영남 4대 길지 중 하나라고 칭송한 명당입니다. 안동 권 씨 충재 권벌의 세거지(世居地)로서 옛날에는 아름다운 석천계곡을 지나야 만 갈 수 있었던 곳이라고 합니다. -

석천계곡은
닭실마을로 가는
들머리였고

요란한 매미 울음 사이로 따가운 햇살이 비집고 들어옵니다. 시나브로 매미의 날개는 엷은 유리세공품의 표면처럼 빛납니다.
닭실마을 길은 매미 날개처럼 느릿하게 반짝입니다. 한낮 햇빛이 쏟아부어져도 그 뜨거움에 아랑곳없이 석촌 댁 할머니의 걸음은 여유롭습니다. 우리 삶도 할머니의 느릿한 걸음을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그 걸음 느려도 한평생 살아오며 어긋난 길을 걸어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닭실마을은 태백산에서 소백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에 자리한 봉화읍에서 약 2Km 떨어져 있습니다. 얼마 전 봉화군에서 ‘솔숲 갈래길’로 지정했는데, 봉화읍에서 내성천에 놓은 두 개의 징검다리를 건너 삼계교를 지나면 오른쪽으로 마을로 들어가는 석천계곡이 이어집니다.
옛 석천계곡은 닭실마을로 들어가는 들머리였습니다. 내성천 지류인 석천을 따라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면 석천정사를 만나고 징검다리를 건너 오른쪽으로 휘돌아 가는 길을 따라가노라면 저 멀리 나지막이 평화로운 마을 그림자가 눈에 들어옵니다.
석천에서 닭실마을로 가는 길은 석촌 댁이 처녀 적 흐르던 땀을 씻던 곳이기도 합니다. 달빛 어스름한 밤에....

하늘 위에
신선이 사는 마을
청하동천

울창한 숲 사이로 흐르는 맑은 물은 사행천의 전형을 이루며 돌고 또 돌아 흐릅니다. 물줄기는 마치 한복 저고리의 어깨선 같고, 소맷자락의 완만한 곡선 같이 휘감아 흐릅니다.
옛날에는 석천계곡을 거치지 않으면 닭실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없었답니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은 닭실마을의 기를 꺾기 위해 마을 앞으로 철도와 도로가 지나가도록 만들었다고 합니다. 금계포란지국(金鷄抱卵支局)의 명당인 닭실마을에서 의병대장과 독립투사가 많이 나오자 위기감을 느낀 일본이 마치 수탉의 모가지를 자르듯 철도와 도로를 마을 앞에 내었던 것이지요.

석천계곡을 들어서면 오래된 솔향기가 그윽하고 잠시 물소리에 젖어드는가 하면 큰 바위에 청하동천(靑霞洞天)’이란 글귀가 붉은 부적처럼 새겨져 있습니다. ‘하늘 위에 있는 신선이 사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충재 선생의 5대손 권두응의 글씨입니다.
기암괴석이 많은 석천계곡에는 도깨비들이 몰려와서 놀았다는데, 이로 인해 석천정사에서 공부에 전념하던 서생들이 괴로움을 당하자, 권두응 명필이 바위에 글씨를 새기고 붉은 칠을 하여, 필력으로 도깨비를 쫓았다는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권벌의. 맏아들 권동보는 권벌이 삭주로 귀양을 가 죽게 되자, 관직을 버리고 이 계곡 바위 위에 석천정사를 짓고 여생을 보냈답니다. 너럭바위에는 방금 몸 씻은 할미새 한 마리가 꼬리를 까닥이며 한가롭습니다.

청암정
거북바위
오래된 왕버들

석천계곡 끝자락에서 바라보는 닭실마을은 글자 그대로 금계포란(金鷄抱卵)의 형국입니다. 현재의 유곡리(酉谷里)에 해당하는 닭실은 유곡이라는 한자를 우리말로 그대로 옮긴 것이며, 경상도 북부지방에서는 이라고 부르기도 해서 더러는 ‘달실마을’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백설령이라는 나지막한 산기슭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기와집과 그 앞으로 펼쳐져있는 초록의 논을 바라보면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특히 왼편으로 흐르는 물길이 마을을 포근하게 안아 흐르는 모양은 마치 활시위를 당긴 모양과 같아 궁수(弓水)라고 부르기도 할 만합니다. 마을에는 지금도 35가구의 마을 사람이 살고 있는데, 모두 충재 선생의 자손들입니다.

청암정이 놓여 있는 너럭바위는 물속에 엎드린 거북이라 여깁니다. 거북바위 위에 지어진 청암정은 둘레의 연못, 기다랗게 깎은 돌다리와 오래된 왕버들로 어우러진 아름다운 정원입니다. 바위는 거북등처럼 평평하지 않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살려 주춧돌과 기둥의 길이가 각각 다른 구조를 가졌는데, 옛사람의 자연친화적 삶을 엿볼 수 있어 즐거움이 더합니다.
정자의 한쪽 방은 온돌방으로 꾸며 불을 지폈었는데, 어느 날 바위가 소리 내어 울어, 이를 기이하게 여기던 차에 한 스님이 지나가다 바위를 가리키며 정자 방에 불을 지피는 것은 거북 등에 불을 놓는 것과 같다 해서 아궁이를 막아 마루를 놓은 뒤, 둘레를 파서 연못으로 만들었더니 울음을 그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장대석이라 부르는 기다란 돌다리에는 곳곳에 오래 묵은 발자취가 남아 움푹움푹 패인 흔적이 보입니다. 아무리 단단한 돌도 오랜 세월 닿은 발자취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음을 깨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