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숲~길 떠남
길을 떠난다는 것은 일상을 털어버리는 것.
삶이 무겁고 지루해지면 내 마음속에 그렸던 작은 원을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처음엔 알맞은 크기의 원이라 여겼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굴레가 나를 억누릅니다. 이제는 그 흔적을 지우고, 또 다른 원을 그리기 위해 길을 떠나봅니다.
길을 걷는 것은 세상에 대한 깊은 인식과 만남의 대상을 향한 경외를 불러일으키는 우아한 생각을 배울 수 있어 좋습니다. 자연과 더불어 길에 남아있는 오래된 발자취를 떠올리고, 아름다움과 평온함에 대한 동경을 통해 깊은 내면의 만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
몽골의 초원은 우리의 들길과는 다른 느낌을 줍니다. 끝없이 펼쳐진 풀밭 사이로 가물가물 이어지는 들길은 어디로 이어지는 길인지 궁금합니다. 그 길을 따라 걷노라면, 세상에서 가장 멀다고 하는 내 마음속의 길을 향하는 듯도 합니다. 아직 가보지 못했고, 영원히 갈 수 없을지 모르는 내 속의 길로 들어갈 것만 같은 붉은 들길.
쏟아지는 뜨거운 뙤약볕도 소나기 한줄기에 사그라지는 곳. 그곳에서 함께 걸었던 사람들을 기억합니다. 처음 만남이었지만 마치 오랜 친구 같은 사람들... 간간히 이어지는 불편한 부대낌도 양고기에 흩은 톡 쏘는 후춧가루처럼 여기는 사람들과의 동행은 참 즐겁습니다.
자연은 어리석은 우리에게 병도 주고 약도 주는, 지혜로운 친구의 배려 같습니다.
친구가 되다
우리의 여정은 끝없는 새의 날개 짓을 따랐습니다. 떨기나무 덤불 사이로 ‘포르릉포르릉’거리는 작은 날개 짓, 마른 흙 거친 돌멩이 위를 ‘통통’거리는 멧새들의 발레, 푸른 허공을 나는 맹금류의 거대한 날개 짓. 텅 빈 지평선은 새들이 남긴 온갖 곡선과 서툰 원의 자취로 마치 어린아이의 낙서장 같습니다. 바람 한 점 불면 언제 그랬냐는 듯 그 자취는 사라지고, 어느 듯 하늘은 다시 푸른 도화지가 됩니다.
만남이 잦으면 정이 든다 했던가... 초원을 나는 작은 새들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이번 여행에서 얻은 또 다른 즐거움 중 하나는 좋은 친구를 만난 일입니다. 수더분한 외모에 느릿느릿한 말과 거짓 없는 표정에서 단박에 ‘큰오색딱따구리’ 아빠임을 알아챘습니다.
새들의 쉼터 숲
“새들은 쉼을 위한 둥지와 번식을 위한 둥지가 따로 있습니다.”라고 그는 말합니다. 그러고 보면 새들은 참 영특합니다. 어떤 사람은 ‘새’의 의미를 ‘사이’라는 의미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좀 억지 같은 표현이지만 묘한 뉘앙스를 주기도 하는 해석입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 하늘의 뜻을 아래 세상으로 전하는 경이로운 개체로 여겨 ‘사이’, ‘새’라는 풀이입니다.
지금을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의 일과 쉼의 공간은 바쁨으로 인해 자꾸 좁아져갑니다. 삶이 넉넉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터가 곧 쉼터인 경우가 많습니다. 바쁜 일상에서 많은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먼 곳에 쉼터를 두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새들은 지혜롭게도 번식을 위한 둥지와 쉼을 위한 둥지를 멀찌감치 두어, 우리에게 행복한 삶의 본때를 말없이 가르칩니다.
쉼이 있는 숲
몽골의 숲은 우리의 숲과는 사뭇 다릅니다. 그곳에는 코모레비(こもれび-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를 찾기 힘듭니다. 대신 몽골의 하늘에는 ‘몽글몽글’ 하늘이 피운 꽃들이 만발하고, 그 흰 꽃들이 푸른 하늘과 어우러져 고운 비췻빛입니다..
들길을 걷는 것은 떠나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숲길은 드는 의미를 가집니다. 나그네가 떠나는 길은 언젠가는 돌아와야 하는 길이지만, 숲길은 드는 길입니다. 떠났던 내 마음이 다시 내면으로 되돌아오는 길. 길을 떠나는 것은 일상을 털어버리는 의미로는 같은 일이나, 들고 나는 것이 다른 듯합니다.
잠시의 일탈 후, 가까운 숲길을 걷습니다. 또 다른 작은 원을 그리기 위해...... 그래서 떠남의 허무함에서 되돌아와 새로운 삶을 위한 내면의 길, 치유의 숲으로 들어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