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숲

치유의숲~도토리가 떨어진 숲

수풀7 2021. 10. 31. 09:56

감천고개 너머로 산들바람 불어올 때면 어린 시절의 만날고개 숲길은 갈 곳 없는 산동네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곤 했습니다. 우르르 몰려다니다가 버려진 나뭇가지 하나 주워, 보물이라도 발견할 듯 하릴없이 수풀을 휘저으면 풀잎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도토리 몇 알에 어린 가슴이 콩콩거렸지요. 저녁놀이 감천골에 걸릴 때쯤이면 어느 듯 깃 낡은 내 주머니는 다람쥐 볼처럼 볼록해집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빨라지고, “아이고, 이렇게 많이 줏었구나.”하는 어머니의 다정한 목소리가 아직도 귓전을 맴돕니다.

가을이 오는 숲

어린 눈에도 가을산 위에 걸쳐진 하늘은 왜 그다지도 푸르던 지요. 산모퉁이 돌아 나온 산들바람이 귓불을 스치면 땀에 젖은 겨드랑이는 뽀송뽀송해집니다. 잎사귀 사이로 스치는 바람소리가 커지기 시작하면 숲의 빛은 달라집니다. 좀체 변할 것 같지 않던 초록은 어느 틈에 울긋불긋 단풍색을 띱니다.

봄 숲의 변화는 산 아래에서 비롯되지만, 가을 숲은 높은 산마루에서 시작되어 삭막했던 도심으로 자연의 경이로움을 전해줍니다.
단풍나무, 붉나무, 옻나무, 마가목, 화살나무는 붉은빛으로
생강나무, 쪽동백나무, 느티나무는 노란색으로
떡갈나무, 신갈나무, 굴참나무는 황갈색으로 숲의 빛깔을 바꾸어줍니다.
단풍은 자연의 은밀한 변화지요. 한여름 뜨거움의 고통과 인내가 성취로 혹은 오히려 체념으로 승화된 숲 자신만의 축제일지도 모릅니다.

숲의 풍요로움

가을 숲은 풍요로움 그 자체입니다. 보랏빛 작살나무 열매는 보석처럼 빛나고, 쩍 벌어진 풍성한 밤톨은 넉넉한 숲 양식입니다. 붉나무 열매에서 맛볼 수 있는 소금기는 이 나무에게 염부목(鹽膚木)이라는 별명을 지어 주기도 했고, 그 열매를 염부자라 부르기도 합니다.

요즘처럼 게임이 발달하지 못했던 그 시절은 숲이 훌륭한 놀이터였습니다. 나무의 종류만큼이나 각기 다른 모양으로 열리던 도토리를 우리는 꿀밤이라 불렀고 나름 괜찮은 놀잇감이었지요.
길쭉하고 뾰족해 보이는 졸참 열매,
털북숭이 깍정이에 둘러싸인 둥글넓적한 떡갈, 굴참, 상수리 열매,
깔끔한 깍정이에 통통한 타원형의 갈참, 신갈나무 열매는 어린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안성맞춤이었습니다. 호주머니 가득 들어앉은 도토리는 어린 마음에도 묘한 충만감을 주었습니다.

도토리의 기억

어른들이 앞 다투어 도토리를 줍곤 했던 옛 기억이 납니다. 숲 바닥에는 도토리 알맹이가 빠져나간 깍정이만 뒹굴고, 대부분의 도토리는 커다란 자루에 담겨 산동네 골목집의 덕석 위로 널려졌습니다.
아련한 기억을 더듬어보면 옛날에는 지지리도 먹을 것이 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보릿고개를 겨우 벗어났던 그 시절, 가난한 사람들에게 도토리 줍기는 가족의 생계를 잇는 노동이었지요. 옛말에 도토리는 들판을 내다보고 열매를 맺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졌을 정도였으니까요.

오늘날 아무리 물질적으로 풍요롭다 해도 인류가 진화해 온 수백만 년, 그 오랜 세월 동안 체득한 채취의 습관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옛 조상의 채취 본능에 대한 DNA가 아직도 우리의 몸에 도토리 줍기라는 흔적으로 남아있나 봅니다.

상생의 숲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숲은 조금씩 소외되어가는 듯합니다. 사람들은 욕심의 추구를 통해 자신의 영역을 확대해나가고 숲은 그 이용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숲의 품에 들어있는 사람들조차도 대립과 갈등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숲 속은 변화를 기다리는 많은 생명들이 다양성의 진리를 이어갑니다.

참나무는 우리에게 도토리라는 풍성한 먹을거리를 마련해주었지만, 동시에 야생동물의 중요한 먹잇감이기도 합니다. 새가 깃을 접고 쉬어가듯 숲은 다른 생명체도 품어주기 때문입니다. 지나친 욕심으로 숲이 생존의 경쟁 터가 되기보다는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상생의 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숲은 나뭇가지와 잎을 하늘로 뻗어 자연 속에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해줄 것이고, 우리는 그를 통해 나눔의 치유를 얻는 즐거움을 누렸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