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소리 그윽한 화림동계곡
- 선비마을이라 불리는 화림동 계곡은 덕유산에서 발원된 금천이 흘러 깊은 계곡을 따라 8담 8정을 이루고 있으며, 냇가에 기이한 바위와 담, 소를 만들고 거연정, 군자정, 동호정을 거쳐 농월정에 이르러서는 반석 위로 흐르는 옥류와 소나무가 어우러져 무릉도원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 장장 60리에 이르는 우리나라 정자문화의 보고라고 불리어지며, 옛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던 아름다운 계곡이다. -
맑은 물소리와 숲이 어우러진 계곡
이미 가을이다.
길 곁 언저리에 널린 붉디붉은 고추는 아낙네의 얼굴을 검게 그을리게 하고, 수건으로 가리운 얼굴에는 이미 가을이 반쯤 잠겼다.
누군가는 태초에 가벼운 것은 올라가 하늘이 되고, 무거운 것은 내려와 모든 것을 받아들여 포용하는 가이아가 되었다고 노래했다는데, 여기 이 계곡은 맑아 거울 같은 계곡물에 하늘이 쏟아져 내렸을까... 작은 여울에는 푸른 하늘이 가득 잠기고 이윽고 한 폭의 수채화가 되어 부드럽게 번진다.
숲이 무성한 계곡 길을 따라 걸으면 새소리, 물소리가 오롯이 자연의 오케스트라, 어찌 이리도 그 화음이 정겹고 아름다울까? 레너드 번스타인도 이 아름다운 화음은 연주하지 못했을 것이다.
옛 조선의 선비들이 과거길 따라 걷다 지쳐 갓끈 풀고, 헤진 짚신 벗어던지곤 탁족이라도 함 직했을 맑은 계곡이 잇닿아 있는 곳, 양반 체면에 상것들이 하는 적나라한 행위에 더하여 인문학적 사유를 즐기며 그럴듯한 학문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계곡의 맑은 웅덩이마다 ‘쉼’을 위한 여덟 정자 만들어 풍류를 즐겨서 함양을 정자 고을이라 불렀을까?
문득 길을 걷다 은구슬 구르듯 흐르는 물줄기 사이로 연리목(連理木) 한그루를 만난다. 얼마나 그리웠으면 비록 딴 몸이지만 두 몸을 감고 부대끼며 함께 살을 섞으려 애쓰는가?
어느 지인은 “보이는 것들만 사랑하기에도 사람의 가슴은 너무 좁아요.”라 말한다.
선비마을의 역사와 정자문화
안의삼동(安義三洞)의 하나인 화림동
예로부터 영남지방의 조선 선비 하면 ‘좌 안동 우 함양’이라 하지 않았는가... 굳이 퇴계 이황, 남명 조식 선생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지금은 화림동 계곡을 ‘선비문화탐방로’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탐방로는 거연정 물줄기로부터 시작된다.
자연스레 휘돌아 나가는 물줄기를 그윽이 바라다보는 거연정은 제멋대로인 바위를 주춧돌 삼아 기둥이 섰다. 짙푸른 소(沼) 위의 무지개다리 밑 단아한 너럭바위 사이로 흐르는 초록물이 급하게 소용돌이치면 세상의 상념으로 속내가 어지럽다.
또다시 숲길을 걸으면 군자정을 만나고, 함양의 선비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정여창 선생이 찾아와 시를 읊었던 곳이라 하여 군자정(君子亭)이라 이름 지었다 한다.
계곡 길을 따라가다 징검다리 위로 개울물 건너면 커다란 너럭바위 너머 동호정에 이른다. 걷기에 지친 걸음을 잠시 동호정에 앉히면, 팔각지붕에 사뿐히 들어 올린 처마 아래로 길게 뻗은 옥녀담과 너럭바위가 한가롭다.
잠시 눈을 들면 사면이 푸른 숲 그늘이고, 한가로운 호성 마을 지나면 경모정, 황암사로 화림동 계곡의 아름다운 절경이 이어진다.
끝없는 계곡을 거닐다 보면“술 한 잔으로 달 밝은 밤 개울물에 비친 달빛을 희롱한다.”는 농월정... 그러나 10년 전 방화로 소실되어 아직까지 복원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운 심정이 인다.
따가운 가을 햇빛 사이로 시원한 계곡 길을 걸으면, 몸도 마음도 씻겨 세상의 시름이 덜어진다.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