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숲

치유의 숲~숲에서 멀어진 아이들

수풀7 2020. 6. 10. 19:46

6월이 오면 가장 먼저 길가에 피는 꽃이 있습니다.
개망초
달걀 프라이를 닮았다고 ‘달걀 꽃’이라 부르는 이 꽃은 농사를 망친다고 망초라 부르는 이름 앞에 ‘개’ 자를 붙여 생긴 이름이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 농사와는 무관해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기도 합니다.
한두 해 농사를 묵히면 제멋대로 떼 지어 피는 개망초 무리가 사람의 눈에는 마치 농사를 망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묵은 밭에 주인 없어 피었더니 빈터를 점령한 나쁜 놈으로 인식되었겠지만, 이런 식물 사회적 생식 방법은 숲이 형성되기 위한 천이의 매우 중요한 과정이기도 합니다.

자연과 멀어지는 아이들
요즘 아이들은 나무에 올라 바람을 맞고, 숲에서 뛰어놀거나 강에서 수영을 하면서 자연과 친해지기보다 오히려 통 크게 지구가 아파요라고 하며, 지구의 환경을 어른처럼 걱정합니다. 아마존의 열대우림은 알지만 혼자 숲을 걷거나 들판에 누워 바람소리를 듣고, 구름이 흘러가는 걸 쳐다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어떤 광고에는 알프스 산길을 자동차가 달리는데 그 뒷자리에 앉은 아이는 창문 너머 펼쳐진 아름다운 경치에는 안중에도 없이 게임기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가져봅니다.
여러 교육기관에서 내놓은 교육방침은 안전을 이유로 강과 숲을 위험지역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고, 교육체제와 언론 및 학부모마저 아이들을 숲과 들판으로부터 떼어놓고 있는 현실입니다. 뿐만 아니라 대학교육과정도 성과중심으로 변해 자연사 관련 학문은 사라져 버렸고, 동물학은 미생물학, 생명공학이란 이름으로 바뀌어버렸습니다.

잃어버린 숲
이제는 사람과 동물, 사람과 기계의 경계선도 모호해지고 있습니다. 하늘을 나는 새를 향한 동경은 드론의 발달로 인해 깨어졌고, 현실세계가 사람의 인위적 계획인 특별한 구성을 통한 증강현실로 비침에 따라 아이들이 자연에서 멀어지는 일이 허다해졌습니다. 새소리와 초록 빛깔로 채워진 아름다운 영상이 HDTV 화면에 선명하게 채워져, 아이들이 숲으로 가야 할 이유가 없어져버렸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이들과 숲과의 관계는 깨어지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저는 집에서 노는 게 더 좋아요. 재미있는 게임기가 있으니까요라고 말합니다. 자연의 종말은 슬픈 현실이지만, 김동원 시인의 ‘초록수프’를 읽으며 숲 사이로 비치는 따스한 햇살을 느껴봅니다.

숲의 다른 천이
문화적 측면에서도 자연을 옹호하는 태도는 찾아보기 힘들어졌습니다. 이전 세대들에게는 나무 한 그루야말로 그 자체로 아름답고 온전한 것이었지만, 이제는 나무에 바이러스와 세균에서 추출한 유전물질을 주입해서 더 빨리 양질의 목재로 키우고, 오염된 토양을 정화하는 데 사용합니다.
미국 국방부 DARPA는 생물학 무기나 화학무기에 노출됐을 때 색깔이 바뀌는 나무의 개발을 시도했고, 캘리포니아 대학은 나무의 피임법이라는 유전공학 기술을 개발해 열매 맺기가 아니라 양질의 목재로 자라는데 양분을 집중시키는 거세된 나무를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신기술에 대한 연구는 늘고 있는 반면, 아이들에 대한 관심은 점점 미약해져 갑니다. 이렇게 생물학적 절대성이 모호해지는 이 시대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숲의 천이를 배워요
삶이란 어머니의 배를 빌려 시간이라는 흐름의 열차에 잠시 올라타는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모든 생명체가 부여받은 탄생이라는 숙명도 이 시간의 흐름에 올라타는 것이겠지요. 그런 뜻에서 숲의 천이는 초목들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공간을 점유하고 변화시켜가는 숲의 현상입니다. 이런 숲의 천이과정은 이미 성숙한 어른을 더 성숙한 세계로 이끌어주며, 아이의 상상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빈 도화지이기도 하고,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에게는 위안을 주는 공간이 될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 감나무 꼭대기에 올라 저 멀리 내다보이던 돌담 사이 저녁연기가 생각나십니까? 그 아이의 마음속에 지금은 어떤 숲을 그리워하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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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자꾸 숲을 수프라고 불러요
엄마는 수프가 아니라 숲이라고 고쳐주지만,
아침마다 아빠가 갖고 온 숲 속 초록 수프에
식구들은 딱따구리 소리를 넣어 먹어요
뻐꾸기 소리도 뻐꾹뻐꾹 넣어 먹어요
디저트론 바람 속에 몰래 숨어온
아카시아꽃향기를 떠먹어요.
아빠는 자꾸자꾸 숲을 수프라고 불러요

                       ― 김동원,초록 수프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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