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기행

숲기행~개비리 길을 걷다

수풀7 2020. 6. 24. 14:27

- 경남의 동쪽을 흐르는 낙동강은 무려 108km, 그 유역에는 5군데의 개비리길이 있습니다. 그중 창녕군 남지읍 영아지에서 용산리에 이르는 2.5km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따라 걷는 남지 개비리길은,, 영아지 사람들이 남지 웃개장을 보러 다니던 민초의 길이라 더 슬프고도 아름답습니다. -

강 따라 이어지는
개비리길 언저리에는
웃개장터 술 냄새가 배어있고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 굽은 물길을 바라보며,
끝없이 이어지는 둑길을 걷다 보면,, 끝물인 푸른 유채 잎 사이로 간간이 묻어나는 노란색 봄 흔적에 마음이 이끌립니다.
둑길 막바지 용산마을 양지바른 들녘이 눈에 들면, 길게 이어지는 한적한 시골길을 따라 용산정수장이 아른거리고, 길은 낙동강 물줄기 돌아 긴 벼랑을 따라 이어집니다.

개비리길의 는 물가(갯가)를 나타내는 ()’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비리는 벼랑을 뜻하는 토속 방언으로,강을 따라 생겨난 좁은 벼랑길이라 여겨지고 있습니다. 간혹 영특한 개의 전설과 함께 개가 지나다닐 정도로 좁은 벼랑길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지요. 오솔길을 오소리가 뒤뚱뒤뚱 다니던 길이라는 우스갯소리처럼 말입니다.

옛날에는 창녕의 영아지에서 남지까지 이르는 변변한 길이 없어 고곡, 반포, 창아지에 살던 사람들은 남지의 웃개장을 보러 이 개비리길을 걸어 다녔다고 합니다. 간단한 봇짐을 지고 소를 몰며 남지 웃개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은, 할아버지를 기다리는 손자 놈의 목만큼 길었을 것입니다.
강인지, 길인지, 벼랑아래 부딪히는 물결을 바라보며 가끔은 술기운으로 비틀거리는 발걸음에 오금이 저리기도 했을 것입니다.

창나리 나루터에는
알개실에서 성산리로 가는
세월의 흔적이 남아있고

임진왜란을 겪으며 왜군이 이 강을 따라 배를 타고 올라와 남지 사람들을 괴롭힐 때, 곽재우 장군이 의병을 모아 낙동강과 남강이 합해지는 기음강 강바닥에 죽창을 꽂아 왜선을 침몰시켰다는 뭉클한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그 옛날의 통쾌한 쾌감이 어젯밤 일처럼 짜릿하게 전해옵니다.

영아지 갯가에는 창나리(창나루)라 부르는, 창녕군 남지읍 용산리 알개실에서 의령군 지정면 성산리로 가는 나루터가 한 폭의 수채화처럼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발길이 끊긴 손님을 기다리는 나루터에 걸터앉아, 성난 물길을 잠재우고자 제를 지냈다는 그 옛날 흰옷 입은 제관을 기억하곤, 그 애타는 마음을 닮아 봅니다.

개비리길 벼랑은 억겁을 넘는 세월 동안 부딪히는 물살로 인해, 멍들고 후벼 파진 상처를 고스란히 영아지 사람들과 나누고 있었습니다. 6월의 햇살을 듬뿍 받은 벼랑길에는 의연한 모습의 큰꽃으아리, 마삭줄 하얀 꽃, 노란 기린초, 은난초, 졸방제비꽃이 작은 풀꽃세상을 이루어 아름답습니다.

유유한 강물 따라 억새의 물결도 함께 흐르고, 미루나무 한그루가 강바람 즐기는 냥 반짝이는 강물 위로 흔들거립니다. 저 강물과 미루나무는 어찌 저렇게 정다울 수 있는지요

남방부전나비
마삭줄 벼랑
부처사촌나비
왕자팔랑나비
은난초
졸방제비꽃
큰꽃으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