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 걷기~홋카이도대학 식물원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가끔은 말문이 열리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말은 하고 싶지만, 말을 하게 허락하는 마음이 뭔가 복잡한 이유로 열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은 마음으로부터 나옵니다.
마음이 열리지 않으면 말문도 열리지 않습니다. 마음은 '말의 문' '말문'입니다. 나 자신에게 해당되는 말일지도 모르지만, 마음에 없는 말문을 함부로 여는 사람도 있습니다. 마음의 결정이 있기 전에 입이 먼저 열리는 말, 그런 말을 우리는 영혼이 결여된 말, 혹은 절제가 부족한 말이라 표현하기도 합니다. 급한 나머지 마음이 말을 다스리기 전에 먼저 튀어나와버리기 때문이겠지요. 아마 '배려'라는 여유로움이 부족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배려는 마음 깊은 곳에 고인 지혜의 맑은 샘.
배려가 깊은 사람은 말을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또 다른 시각으로 배려는 마음을 다스리는 도구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꿈을 통해 무의식 깊은 곳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 꿈은 현실적 문제로 뭔가 복잡해 열리지 않았던 말문에 대한 몇 가지 문제덩어리를 무의식의 세계에서 실체화시켜 '꿈속의 말문'을 시원하게 열어주기도 하고, 답답한 현실로 인해 억압된 스트레스를 어머니의 자궁 속처럼 편안하게 감싸주고, 귀기우려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꿈은 인간의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배려 주머니'라고나 할까요. 그 꿈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지혜에 도달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우리의 무의식 속에는 자신이 아는 것보다 훨씬 많은 능력과 지혜가 있지만 불행하게도 이것을 끄집어내지 못해 행복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도 흔히 보입니다.
삿포로에는 자연의 배려가 있는 공간이 많습니다. 그중 '북해도대학 식물원'은 가장 으뜸 되는 배려의 공간입니다. 빌딩 숲으로 둘러싸인 도심의 한가운데 펼쳐진 넓은 숲은 삭막한 도시의 오아시스입니다. 1886년 개원된 이 식물원은 일본 최초의 근대적 식물원이자 도쿄대학 식물원에 이어 두 번째로 오래된 곳입니다.
식물원은 설립 당시부터 일반에게도 공개되어 시민의 자연교육에 도움을 주도록 운영되고 있어, 지금도 원내에는 많은 시민 숲연구가들이 카메라를 들고 숲을 거닐고 있습니다. 삿포로 농학교 교장 클라크 박사는 농학교육에 식물원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학교 내에 조그만 식물원을 만들었고, 지금은 면적 약 4만 평에 달하는 식물원 안에는 약 4천 종의 식물이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정문을 들어서면 홋카이도, 치시마열도, 사할린 섬 등지에서 자생하는 사할린 전나무 토도마츠(Pinaceae Abies sachalinensis)가 군락을 이루고, 홋카이도를 대표하는 느릅나무 숲(ULMUS FOREST)에는 150~200년 된 나무들이 하늘을 찌르며 서 있습니다. 북해도의 오래된 나무 150선에 기록된 루브라참나무(Quercus rubra), 독일가문비나무(Picea excelsa)등 수많은 도입 수종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아이누족, 니부히족, 윌타족의 다양한 식물 이용에 대한 자료를 설명한 북방민족 식물표본원, 홋카이도 높은 산에 식생하는 고산식물원, 홋카이도에 자라는 들꽃 36과 157종을 설명하는 초본 분과원, 관목원 등이 숲 애호가들의 발걸음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오래된 박물관에는 홋카이도 원주민인 아이누족을 비롯한 북방민족의 생활과 문화, 그리고 홋카이도의 개척 역사를 보여주는 북방민족 자료실이 있습니다. 연구실에서는 다양한 식물 세계를 위해 식물분류학, 식물생태학의 연구가 진행 중이며, 홋카이도의 자연식생과 멸종위기에 처한 희귀 식물의 보존, 보호와 증식에 관한 조사와 연구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현재 식물 표본실에는 약 5만 점의 표본이 보관되어 식물 계통학의 연구와 교육에 활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삿포로의 거친 바람으로 큰 나무들이 흔들리고, 내 마음도 함께 흔들립니다. 놀란 새들이 하늘을 날고, 잠시 오솔길 사이로 시선을 옮기면, 좁다란 길섶에는 부지런히 삶을 이어가는 개미들의 행렬이 깁니다. 잔디밭 사이로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가 들리고, 이 식물원의 미래는 아이들의 미래가 될 것입니다.
~ 홋카이도대학 식물원을 걸으며 ~
캄차카 진달래 계곡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