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숲~숲속을 흐르는 물
비 온 뒤 숲은 온통 물기로 가득 차있습니다.
나뭇가지와 잎사귀에는 수많은 물방울들의 잔치가 벌어지고, 흔들리는 이파리의 영롱한 물빛은 쏟아지는 햇살에 눈부십니다. 잎새 끝에 달린 작은 물방울에는 깊은 잎맥의 흔적이 뚜렷합니다. 숲 속의 작은 물길처럼 패인 잎맥에는 어쩌면 200만 년 전 사바나 숲길의 DNA가 흐르는지도 모릅니다.
푸드덕...
참을성 없는 새 한 마리 가지를 박차면,
후드득...
나무는 온몸의 물기를 몸서리치듯 흘려버립니다.
물이 흐르는 숲
숲은 빗물이 흐르는 양을 조절합니다. 한 차례 비가 쏟아지면 숲 우듬지에는 빗물이 흥건합니다. 이윽고 가지에 묻은 물기는 바닥으로 한 방울씩 떨어집니다. 그래서 ‘숲에서는 비가 두 번 온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비가 엄청나게 쏟아져도 나뭇잎이 한차례 막아주어 바닥에는 물이 골고루 떨어집니다. 이런 과정으로 인해 대부분의 물은 흙속으로 완전히 흡수될 수 있습니다. 숲은 이러한 자연의 조화에 순응하며, 뿌리가 붙든 흙 알갱이 하나하나를 간직해줍니다.
고목의 그루터기에는 부드러운 이끼가 자라고, 빗물이 세차게 흐르지 못하도록 지탱해줍니다. 초록 융단 이끼는 자신의 무게 몇 배가 넘는 물을 저장해서, 다시 주변에 조금씩 나누어주는 일을 합니다. 그래서 오래된 숲의 흙은 부드럽고 포근합니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숲은 이처럼 빗물 저장 장치를 스스로 만들고 숲 자신을 지켜나갑니다.
왜 물이 흘러야 할까?
하늘을 향해 빗겨 뻗은 나뭇가지는 뿌리에서 시원한 물을 끌어올립니다.. 물은 다시 줄기를 따라 아래로 흘러 뿌리까지 닿습니다. 아래에 도달한 물은 구멍이 성긴 흙으로 스며들어, 거세게 퍼붓는 폭우도 스펀지처럼 빨아들여 서서히 심토층 밑으로 스며듭니다. 목마른나무 들은 이 과정을 되풀이합니다.. 뿌리 둘레의 흙은 초록 댐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목이 마르면 언제든 다시 물을 끌어올 수 있습니다. 나무가 목을 축이고 남은 물은 흙속에 그대로 있습니다. 식물의 뿌리는 깊이 박혀 있지 않기 때문에 그 이상 물을 위로 끌어올리지 못합니다. 이것은 다시 땅속 흐름의 일부가 됩니다.
물을 간직하는 숲
빗물이 땅으로 스며드는 과정은 항상 순탄치만은 않습니다. 숲이 없으면 더더욱 상황은 달라집니다. 폭우가 쏟아져 미세한 알갱이 구조가 파괴되고 진흙이 숨구멍을 막으면, 흙속의 물기가 포화상태가 되고, 혼탁한 흙탕물이 다른 개울까지 흘러넘칩니다.. 숲은 느릿한 흐름을 좋아해, 빗물을 천천히 지하수로 흘러들어 가게 해 줍니다.
지구는 3차원 모양입니다. 우리 발밑은 층으로 된 구조로 이루어져 있고,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거대한 생활공간이 숨어있습니다. 사람들은 늘 걷는 발밑조차 잘 알지 못해 서투르게 대해왔습니다. 지하수는 아주 특별한 생활공간입니다. 기후변화로 인해 물의 증발은 심해지고, 지하의 물 보유량은 점점 줄어들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숲은 물의 근원
숲은 지하수에게 아주 중요한 존재입니다. 뜨거운 여름날 참나무가 갈증을 느꼈을 때, 땅에서 빨아들일 수 있는 물의 양은 약 500L입니다. 이렇게 빨아들인 물은 나무가 살아가는 데 사용되고, 나머지는 체온조절을 위해 나뭇잎의 숨구멍을 통해 증발됩니다.
숲의 입장에서는 여름에 내리는 비로는 수분이 충분치 않습니다. 한여름에 목이 탄 나무들은 땅의 수분을 정신없이 빨아들여 윗가지까지 끌어올리기 때문입니다. 숲에는 충분한 물이 필요합니다. 무분별한 나무베기로 숲을 훼손시키는 행위는 우리 스스로를 병들게 하는 일입니다.
나무의 성장과정을 생각해보면 자연의 시간 개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리산 와운마을에는 500년이 넘은 천년송이 의젓하게 마을을 지키고 있습니다. 망가진 자연이 되돌아오려면 이 나무가 살아온 세월만큼의 긴 시간이 흘러야 합니다. 이러한 어려움은 숲만이 치유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