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숲~오래된 나무와의 만남
오래된 나무가 있는 곳이라면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옮겨갑니다.
연휴를 맞아 남국의 오래된 나무 어르신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뉴질랜드 와이포우아 숲(Waipoua Forest)에는 카우리 나무(Kauri Tree)가 군락을 이룹니다.
그곳에는 숲의 제왕(Lord of the Forest)이라 일컬어지는 거대한 나무 한그루가 하늘을 향해 팔을 벌리고 우뚝 서있습니다. 마오리 말로는 타네 마후타(Tane Mahuta)라 부릅니다.
Northland를 지키는 나무
마오리의 세계관으로 볼 때 타네(Tane)는 천신(天神)인 하늘 아버지 랭기뉴이와 지신(地神)인 땅 어머니 파파투아뉴쿠의 아들입니다. 타네는 예부터 하나인 부모를 멀어지게 만들어 틈을 생기게 하고, 그 틈새에 빛과 공기로 생명이 번성하게 하였다는 옛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그 숲은 장엄하여 마오리의 정령이 깃들어 있는 듯합니다. 뉴질랜드에서 살아가는 가장 큰 나무인 타네 마후타는 키가 약 50m나 되며, 2,000년 전 어느 날 씨앗이 싹터 자랐다고 추정되므로, 적어도 2,300년은 족히 넘게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와이포우아 숲에 들어서면 마치 모든 나무들이 가만히 말을 거는 것 같습니다. 숲 속은 정령의 속삭임이 들리는 듯, 거대한 위엄이 온몸을 억눌러 가슴이 무거워집니다. 숲은 고요하지만 새들의 노래로 살아있습니다.
우리 땅의 나무
이 땅의 나무도 뉴질랜드와 다를 바는 없습니다. 예부터 나무는 천상과 지상을 연결하는 신목(神木)으로서, 일종의 신앙의 대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천신인 환인의 아들 환웅이 지상으로 하강한 태백산 정상의 신단수(神檀樹)는 신목에 해당합니다. 또한 마을에서는 고목나무를 마을의 수호신으로 인식합니다. 마을 가운데에 있는 오래된 나무는 ‘서낭목’으로서 신성시되는데, 마을을 지켜주는 지킴이의 역할을 하며, 더운 여름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어 마을 사람들의 쉼터 역할도 해줍니다.
충남 청양에서는 정자나무제, 또는 고목제라는 제를 지냅니다. 청양읍 여의실 마을은 정월 14일에 마을 사람들이 정자나무에 돼지머리와 각종 제물을 차리고 제사를 지냅니다. 일주일 전부터 마을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리며 제물을 장만하고는, 술을 올리고, 축문을 읽으며, 집집마다 소지를 올리며 집안과 마을의 평안을 기원합니다. 고목을 베면 피가 난다든지, 나무를 베어서 사람이 상하거나, 마을이 쇠락했다는 전설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생산성을 가진 나무
나무는 풍성한 생산성을 지니고 있어 예부터 아들을 낳게 해 달라는 기자(祈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가지가 우거지고, 꽃과 열매를 많이 맺기 때문에 강한 생명력의 상징으로 여겨왔습니다. 설날이나 정월대보름에 과일의 수확을 높이기 위해 ‘가수(嫁樹)’라 해서 나뭇가지 사이에 돌을 끼워 넣는데, 민간에서는 이것을 ‘대추나무 시집보낸다’고 말합니다. 가끔 두 나무를 마주 보게 하는 의례도 있는데, 이런 행위는 암수의 줄을 결합해서 당기거나 남녀 장승을 만들어 혼례식을 하고 첫날밤 모의 성행위를 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특히 두 나뭇가지 사이에 돌을 끼우는 행위는 암수 결합의 의미를 지니며, 음양의 조화에 의해 결실이 맺어진다는 자연의 법칙을 주술적으로 나타낸 것인 듯합니다. 어떤 시각에서는 유치해 보이는 이 의례는 잃어버렸던 자연과의 소통을 되찾으려는 옛사람들의 생태적 감수성 발현으로도 보입니다.
깨달음의 상징
불교에서 나무는 깨달음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석가모니는 보리수 밑에서 깨달음을 얻습니다. 보잘것없는 씨 한 알이 거대한 나무로 자라는 것을 두고 불교 경전에서는 부처님께 올리는 작은 보시(布施)가 큰 은덕으로 되돌아온다는 의미로 해석해서 각수(覺樹), 도량수(道量樹)라고 말합니다. 유럽에서도 예부터 신성한 나무로 여겨 이 나무 밑에서 재판이나, 축제, 서약이나 결혼식이 행해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깨달음은 ‘앎’이라 여겨집니다. 가까이에서 멀리, 얕은 곳에서 깊은 곳으로, 외면에서 내면으로, 아련한 곳에서 명확한 곳으로 자신의 처지(處地)를 깨쳐서 환하게 알게 되는 과정. 그래서 상대의 마음을 읽으려면 먼저 내 마음을 열고 그 소리에 천천히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오래된 나무는 가만히 서서 어리석은 우리의 귀를 열게 해주는 어르신 같습니다.
묵묵히 서서 모든 이의 말에 귀 기울이는 나무는 우리를 앎의 경지로 이끄는 평안하고 포근한 어머니의 마음을 닮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