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기행~요정들이 사는 자작나무 숲
- 강원 인제군 인제읍 원남로 760, 자작나무 숲은 강원도 응봉산 자락의 수산리와 원대리 두 곳이 있습니다. 하얀 표피에 높게는 20미터까지 자라는 자작나무 숲은‘숲의 여왕’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추운 곳에서 자라는 특성 때문에 대부분 태백, 횡성, 인제 등 강원도 산간 지방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중 인제는 대표적인 자작나무 군락지로 꼽히지요 -
발끝에서
하늘까지가
하얀 눈빛으로...
뽀드득 뽀드득
하얗게 쌓인 눈길을 걸으면, 젊은 날 가슴 설레며 보았던 영화 ‘닥터 지바고’의 눈부신 설원을 걷듯 영혼마저 가벼워집니다. 시끌시끌했던 ‘사람의 숲’ 속에 부대끼며 지친 마음조차 내팽개쳐진 시간들이 잠시 떠오릅니다. 이제 깊은 겨울에 잠길 자작나무 숲을 걸으며 ‘사람의 숲’이라는 또 다른 세상을 잠시 잊어봅니다.
경사지를 따라 도는 숲길은 후드득후드득 눈송이 떨어지는 소리에 놀라 날아오르는 새들의 날개 짓 소리에 더욱 정겹습니다. 하얀 눈가루가 허공을 휘날리면 숲 속은 눈부신 은빛 가루의 향연이 펼쳐집니다.
발끝에서 하늘까지가 온통 하얀 눈빛, 푸른 하늘이 세상의 경계입니다. 숲은 찬란한 눈빛으로 뒤덮여 무채색 풍경화 같기도 합니다. 광대 옷을 걸친 오색딱따구리 한 마리가 흰 눈이 덮인 나뭇가지 사이로 휘익 비집고 들어옵니다.
이곳의 땅과 땅속, 그리고 하늘을 연결하는 유일한 존재는 나무. 한 마리 새의 지저귐이 하얀 시공을 채웁니다. 여기에 서서 아픔을 기억할 줄 아는, 감성과 영혼을 낡은 나이테에 숨긴 숲과 친하고 싶었습니다.
자작나무 숲은
흰 옷 입은
합창단
사그락 사그락
산등성을 올라 ‘속삭이는 자작나무 숲’ 앞에 서면 하얀 자작나무 숲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흰 속살을 드러냅니다. 푸른 하늘 아래 또렷한 수직의 선과 수평의 질감은 어떤 언어의 유희로도 그려낼 수 없는 수많은 감정의 물결을 일으킵니다.
간벌된 자작나무 전망대 앞에 서면, 둘레는 온통 작은 숲 속 요정이 숨어있음 직한 하얀 숲, 순간 머릿속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정지된 듯 멍한 빈 뇌 상태가 되고 요정의 정령이 몸으로 스며드는 것 같습니다. 이윽고 눈부신 저 자작나무 흰 줄기를 타고 영혼은 하늘을 날고 싶어 합니다.
하얀 자작나무 우듬지가 하늘까지 닿아 숲의 간절한 염원을 알리고, 하늘 향한 그리움으로 변합니다. 흰 길을 가는 애틋한 두 연인은 노르웨이 영화처럼 머리에 자작나무 숲을 이고 순결을 도란거립니다.
세상 속에서 묻어왔던 수많은 상념은 자작나무 사이로 걸으며 흩어지고 자작나무 숲은 흰 옷 입은 합창단입니다. 숲 속에서는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가 장엄하게 울려 퍼지고, 예세닌의 자작나무 숲에게로의 찬미가 들립니다.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다보니, 찬바람이 부는 겨울 산에 추위에 떨며 서 있는 자작나무가 불쌍하여, 천사의 흰 날개로 나무줄기를 둘러싸서, 자작나무는 흰 수피를 가지게 되었다는 동화가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자작나무는 흰 핏줄의 혈관계를 가졌나 봅니다.
자작나무 숲은
하늘로 가는
플랫폼
자작자작
타오르는 자작나무는 러시아 사람들의 등불이기도 했습니다. 참나무목 자작나무과에 속하는 ‘자작나무’는 러시아 사람들에게는 꼭 필요한 나무였습니다. 자작나무 껍질은 물이 묻어도 불이 잘 붙어 불쏘시개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나무가 탈 때 ‘자작자작’ 소리를 낸다고 자작나무라 했고, 결혼식의 화촉(樺燭)으로 자작나무 껍질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자작나무 껍질에 시를 써서 문학을 논했고, 그림도구나 물감을 파는 가게를 화피전이라 불렀습니다.
특히 자작나무가 유명하게 된 것은 자일리톨 껌 때문인데, 산림청에서 자작나무를 심기 시작한 첫 번째 이유가 껌의 재료로 자작나무를 사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합니다.. 또한 박달나무처럼 단단한 자작나무는 집안의 가구를 만들기에 적합하기도 했습니다.
자작나무는 영하 20~30도의 혹한을, 매우 얇은 새하얀 껍질 하나로 견디어 냅니다. 수피는 종이처럼 얇은 껍질이 겹겹이 쌓여 있으며, 수피를 만지면 하얀 가루가 묻어날 것처럼 부드럽습니다. 특히 줄기를 보호하기 위하여 껍질을 여러 겹으로 만들고 그 속에 기름의 성분이 가득합니다.
도스토옙스키는 '자작나무 타는 소리에 감동이 없으면 인간이 아니다'라고 하며 러시아 사람들의 감성에 자작나무와 러시아 문학을 연결시켰습니다. 자작나무는 시각적 심성이 청각과 어우러져 공감각적 인문학이 넘쳐흐르는 러시아 문학의 근원이기도 합니다.
자작나무 숲은 하늘로 가는 플랫폼처럼 메마른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속에 잔잔하게 남아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