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기행

숲기행~금오도 비렁길에 핀 붉은 동백

수풀7 2021. 3. 5. 16:32

- 전라남도 여수시 남면, 여수 앞바다에 있는 금오도(金鰲島)는 우리나라에서 21번째로 큰 섬입니다. 지형이 자라를 닮아 한자 그대로 '황금 자라'라는 뜻입니다. 원래 거무섬으로 불렸는데, 조선시대 궁궐을 짓거나 보수할 때, 임금의 관()을 짜는 재료인 소나무를 기르고 가꾸던 황장봉산이었을 만큼 원시림이 잘 보존된 곳으로, 숲이 우거져 검게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

섬 길을
걸으면
흙의 유혹이...

어느새 봄볕이 따사롭습니다.
언 땅이 녹아 자작해지고, 여인네의 얇아진 옷깃 사이로 살 내음이 물씬 풍기면, 겨우내 참았던 꽃망울이 봄비 맞아 터질 것 같습니다. 꽁꽁 싸매어 두었던 살품에 봄바람 들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듭니다. 몸은 벌써 객선에 실리고 시선은 저 먼바다 언저리를 바라봅니다.
푸른 바다 너머 가물가물 섬 여럿 떠있고, 저 건너 가뭇가뭇한 섬 하나 눈에 들면 괜스레 가슴이 두근거려집니다. 저 섬에는 누가 살까? 무심코 내딛는 발길 따라 구수한 섬 전설 들리고, 어구 아래 모퉁이 집 여수댁의 거친 삶도 함께 그려집니다.

섬길 따라 걸으면 발밑에선 겨우내 얼었던 비밀스러운 해동이 시작됩니다. 봄볕 머금은 땅이 참았던 속내를 분비물처럼 쏟아내고, 이윽고 쌀겨 같이 보드라운 흙이 속살을 드러냅니다. 그 봄 흙을 밟으며 걷는 기분은 야릇합니다.
어머니 품 같은 흙의 다정함이 두 발을 잠깐 품었다 놓아줍니다. 봄이 오는 길목 금오도 비렁길은 질척한 흙의 유혹으로 끈끈해집니다.

비렁길
섬사람의
생활 터전

금오도 비렁길은 보조국사 지눌이 바닷길 수행을 하던 벼랑의 갯가 길이었다고 합니다. ‘비렁길벼랑의 사투리 비렁에서 온 말입니다. 해안절벽과 해안단구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 옛 섬사람들이 땔감을 구하고 낚시를 다녔던 생활의 터전이기도 합니다.

함구미항에서 출발하여 섬사람들이 미역을 따서 널었다는 마당바위인 '미역널방'을 향하면, 높이 90m 정도의 절벽에서 바라보는 다도해의 비경이 아름답고, 한가운데는 바둑혈이라는 작은 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날이 좋으면 고흥 나로우주센터까지 보이는 송광사 절터에서 수달피비렁으로 이어지는 길은 금오도 비렁길에서 가장 멋진 곳입니다.
수달이 쉬었다 간다는 수달피비렁을 지나 오솔길을 따라 걸으면 섬 지역의 독특한 장례풍습을 엿볼 수 있는 '초분'을 만나기도 합니다. 초분을 통해 죽음을 확인하여, 뼈를 깨끗하게 씻어 묻음으로써 다음 세상에서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는 섬사람들의 바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초분 삼거리에서 오붓한 숲길을 걸으면 풍광이 아름다워 신선이 놀았다는 신선대를 만나고, 비자나무와 서어나무가 어우러진 숲길을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면 두포로 가는 내리막길이 보입니다.
금오도에서 가장 오래된 두포마을을 지나면, 물이 풍부한 우물과 느릅나무, 팽나무가 울창한 숲이 있는 굴등마을을 만나고, 다시 촛대바위 전망대를 지나 방풍나물 밭이 한가로운 내리막길에서 내려다보는 직포마을은 푸른 바다와 해송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해변 마을입니다..

동백꽃은
삶의 허무를
일깨워주고...

금오도(金鰲島)는 그 모양이 금빛 자라와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옛날 임금의 관을 만드는 황장목을 길러내는 황장봉산이기도 해서, 고종황제가 명례궁에 하사하여 명성황후가 사랑한 섬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습니다.
두모리에는 직포 해송림이 있는데, 숲 동쪽 옥녀봉에서 선녀들이 달밤에 베를 짜다 무더위를 피해 목욕하러 와서, 날이 새는 줄 모르고 놀다가 승천하지 못해 소나무로 변했다 해서 직포(織布)라고 했다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직포마을에서 출발하여 비렁길을 오르자 빼곡한 동백나무 숲이 엄청난 터널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곧이어 수직절리로 갈라진 이란 지형 사이로 유달리 바람이 세찬 갈바람통전망대를 만나면, 깎아지른 두 절벽 사이에 난 틈으로 거센 파도가 쳐 오릅니다.

숲을 걷는 내내 빨갛게 떨어진 동백꽃은 삶의 허무를 일깨워주고, 동백은 지는 것이 아니라 떨어지는 꽃이라 하였던가! 두고두고 피었다 지는 붉은 동백의 끈질긴 생명력은 걷는 이의 마음을 떨어지는 꽃처럼 툭하고 건드리곤 지나갑니다.
동백 숲을 지나면 오르막길이 이어지며 매봉 전망대에 이르기까지 드넓게 펼쳐진 푸른 바다가 가슴을 환하게 만들어 주고, 간간이 산자고와 둥근털제비꽃이 부끄러운 듯 숨어 핍니다. 전망대에서 내려오면 좁은 해안 절벽을 사이에 두고 다리 중간을 투명 유리로 만들어, 함께 걸어가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비렁다리가 벼랑의 아찔함을 만끽하게 만들어 줍니다.

깊은 개인 심포를 지나 목을 길게 뺀 거북이 바다로 나가는 형상을 한 ‘일종 고지’와 너덜지대를 건너면 비로소 비렁길이 끝이 납니다. 봄볕 따사로운 섬 길은 포근한 흙길과 은빛 바다로 인해 눈부시게 예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