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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숲

삿포로걷기~놋포로 숲에서 보내온 편지

숲은 초록초록 여름에로의 열정을 쏟아냅니다.
나뭇잎 사이로 눈부신 햇살이 내려 쪼이면, 숲은 순식간에 밝은 연둣빛 세상을 연출합니다. 아바타의 한 장면처럼 숲은 다양한 배경화면을 연출하며 온갖 생명을 풀어놓고, 나비족의 DNA를 섞어 만든 아바타를 숲으로 불러들일 때, 낯선 한 사람이 바쁜 걸음으로 오솔길 너머로 사라지는 모습이 눈에 띕니다.

세상에는 참 바쁜 사람이 많습니다.
저렇게 바쁜 사람이 왜 숲길을 찾았는지 잠시 생각해봅니다.
숲길을 걷는 것은 잊었던 기억을 떠올리고, 그 기억을 슬며시 들여다보는 한가한 행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굽은 길을 이리저리 걷다 보면 또 다른 나의 눈 하나가 내 안에 있음을 느낍니다. 그 눈은 바쁜 내 일상의 바깥에서 낡은 나무상자 속의 어릴 적 물건을 찾아내듯,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 잊고 있었던 마음속 깊은 곳의 오래된 생각을 끄집어내어 놓습니다..
그래서
숲길을 걷는 것은 숲을 향하여 나의 모든 것을 열어 놓는 행위입니다. 발로, 몸으로 걸으며 나 자신의 살아있음에 대해 잊었던 행복감을 되찾게 됩니다.
맨발로 걸으면 발가락 사이로 스며드는 부드러운 흙의 감촉으로 다리를 움직이게 하고, 허리의 느긋함이 어깨로 전달되어 즐거운 듯 팔이 흔들리고 이윽고 손가락 끝으로 전달된 즐거움이 마치 폴모리 악단의 지휘자가 된 듯 손가락을 신나게 움직여 ‘L’Amour est Bleu'를 연주합니다.
이제 잠시 연주가 끝나고 초록의 나뭇잎이 흔들리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바쁜 일에 매달렸던 내 마음은 오히려 흐르는 시간을 그윽하게 즐기며 온 몸이 느슨해지기 시작합니다.

숲을 걷는 것은 잠시 동안 나 자신의 몸으로 사는 행위일지도 모릅니다. 숲에 온몸이 빠져 걷는다고 해서 불안한 세상이 나에게 지워주는 십자가를 면제받는 것은 아니지만, 그로 인해 바쁜 숨을 천천히 가다듬고 흐트러진 자신의 내면에 새로운 여유의 공간을 만들어 낼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는 자주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이 있습니다.
불평은 어쩌면 자신의 몸에 붙어사는 스트레스를 극복하지 못하고 짜증을 만들어내는 결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짜증은 매사에 자신의 불합리한 행위의 결과로 생겨나는 몸의 반응 혹은 그 언어적 표현이 불평이라는 낱말로 불거져 나온 것이라 여겨집니다.
우리는 불평을 이기기 위해 그 원인인 스트레스를 해소해야만 합니다. 해소의 방안으로 몸에 힘을 빼고 나를 끊임없이 지배하는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여유를 찾으러 떠나야 합니다.

숲길을 천천히 걷는 것은 나를 둘러싼 둘레의 성급하고 초조한 생활을 헝클어 놓는 온갖 불안한 걱정을 잊게 해주는 유익한 행위입니다. 운전석에 앉거나, 시끄럽게 돌아가는 기계 앞에 서면 막연한 불안에 휩싸이기 마련입니다. 오히려 발로 걸으면 그 어떤 다급한 결과나 의무로부터 메이지 않는 느긋함에 몸을 맡길 수 있게 됩니다.
숲길을 자박자박 걸어가는 가벼운 발걸음을 통해 내 머릿속에 들어있던 불안뿐 아니라 친구와의 다툼, 가족과의 슬픈 대화마저도 멀어져 갈 수도 있습니다. 숲을 걸으면 나무들이 아름다운 수피를 들어내어 주고 그 수피 속으로 비치는 속살을 열어 보이며 반깁니다.

숲길은 마치 도서관 책장의 빽빽하게 꽂혀있는 책처럼, 바쁜 삶 속에서 시간이라는 개념을 세밀하게 나누어 분류한 세상은 아닙니다. 오히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둘레에서 들려오는 숲의 소리를 음미하고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숲을 걷는 사람은 자신의 엄격하게 짜인 삶에서 벗어나 세상 밖으로 홀가분하게 외출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외출은 언제나 신선한 두근거림이나 막연한 기대를 통한 기다림을 동반합니다.
숲길을 걷는 것은 수많은 나무 사이로 천천히 걷는 것처럼 내 마음속에 묵혀있던 많은 생각들 사이로 지나가는 행위와 같습니다.

놋포로 숲은 자신의 땅을 잃어버린 아이누족의 온갖 생각과 사유와 철학의 흔적이 가득한 초록의 공간입니다. 숲을 걸으며 아이누족의 잃어버렸던 생각과 그리움의 기억을 다시 찾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없는 딱 한 가지 일은 내가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일이다.’ 라고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내가 걷는 발걸음이 아직도 바쁜 세상 속에 머물러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면 한 번쯤 걸음을 숲으로 향해보시지 않으시렵니까?

누구나 들어와도 되나, 아무나 들어와선 안 되는
침묵과 겸양과 그리움이 있는 놋포로 숲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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