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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틈 사이로

실눈 고양이 등에 졸음이 얹히고,
피익~ 피익
~ 물주전자 끓는 소리가 정겹습니다.
뚜껑 위 구멍은 오래전 잊었던 존재의 의미를 되찾았습니다.
작은 틈으로 새어 나오는 뜨거운 김이 오후의 햇살 속으로 퍼져나가는가 하더니, 딸각딸각 소리를 내며 들썩거립니다.
들릴 듯 말 듯 느릿한 선율이 무거운 어깨를 내려놓게 하는 한가한 오후
주전자는 느낌 좋은 무율 타악기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공간은 바쁨으로 인해 짜증 난 소리로 가득합니다.
빠른 성과를 위한 재촉
내 주장을 성취시키기 위한 담판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한 고함
내 부족함을 감추기 위한 큰소리
남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교활한 거래

하루 종일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가 우리를 불안으로 이끌 즈음이면, 낡은 주전자에서 들리는 편안하고 부담 없는 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어 집니다. 아무런 의도와 목적 없이 들려오는 소리는 우리를 편안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긴장된 삶 속에서그냥들려오는 맑고 조화로운 소리는 지친 마음에 치유의 위로를 가져다줍니다.

세상일에 고통받고 지친 사람들 중에는 마음의 위로를 얻기 위해 가끔 종교를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은 신앙 모임에서 들려주는 일방적 가르침이나 맹목적 설교보다는 스스로의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소리에 귀기 우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예배를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말씀, 찬양, 사예를 그 3요소로 여깁니다. 여기에서 찬양은 소리의 영역으로 고통과 번민이 가득한 우리에게 하늘에서 내려주는 '위로와 소통의 틈'입니다.

찬양 속에는 아름다운 선율과 노랫말이 가득합니다. 이런 선율은 그저 알맞게 섞여있는 음표의 나열이라기보다는, 처음 만나는 낯선 소리가 서로 조화롭게 섞여서 하나를 이루는 것과 같은 영적 감동을 말합니다. 섞여서 마치 하나가 된 것 같은 자연스러운 감동, 그것은 곧 '하늘의 소리'입니다.
이러한 하모니는 긴장과 이완 사이에 적절한 균형이 이어질 때 생겨납니다. 결국은 음악 속에서 연속된 화음으로 생겨난 음향의 시간적, 공간적 흐름입니다. 이런 흐름은 음표만이 연속되지는 않습니다. 그곳에는 음표와 음표 사이에 쉼표라는 휴식이 있습니다.

이것이 입니다.

작곡가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조화로운 선율이기도 하지만,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서는 선율 사이에 적당한 쉼표가 필요합니다. 악보에 쉼표를 넣지 않으면 그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은 엄청난 고통을 호소하게 될 것입니다. 특히 관악기의 경우 연주자는 숨이 차 죽을 지경이 될 것입니다. 이어지는 선율 속 은 잠깐의 휴식을 주기도 하고, 오히려 화음을 더한층 긴장시켜 소리 없는 절정에 이르게 합니다.
그 쉼표를 이라고 말합니다.

격정적인 선율이 이어지다, 잠시 숨을 죽이는 틈이 생기게 되면 그 음악은 더욱 긴장감이 고취됩니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No.21 K.467 2악장의 피아노 주제 선율은 우리에게 엄청난 긴장감을 주며, 몇 안 되는 멜로디의 간격 간격마다 연주자의 손가락으로 전해지는 각기 다른 쉼을 통한 변주들은 또 다른 감동과 긴장을 자아냅니다. 그래서 연주자마다 달라지는 선율 속의 틈으로 인해 우리는 깊은 감동의 세계로 이끌립니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는 이제 을 내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쉴 틈이 없고, 잠잘 틈이 없고, 만날 틈이 없습니다.
생각할 틈이 없고, 이야기할 틈이 없고, 들을 틈이 없습니다.
볼 틈이 없고, 고칠 틈이 없고, 보여줄 틈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쩌면 으로부터의 디아스포라(Diaspora)’인지도 모릅니다.

숲은 틈이 있는 공간입니다.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빛이 틈 사이로 들어옵니다.
숲의 바람도 나뭇가지 틈 사이로 불어 듭니다.
새들도 나무 사이 틈으로 날아들어 가지에 사뿐 앉습니다.
벌레들도 수풀 틈 사이로 기어들어 살아갑니다.
숲을 걷는 사람들도 숲의 틈으로 난 길을 걸어갑니다.

바쁜 세상살이에서 잠깐 빠져나와 숲으로 눈길을 돌려봅니다.
숲길을 걷다, 잠시 을 내어 숲의 소리를 들어봅니다.
숲이 속삭이는 소리, 우리를 위로하는 소리를...

https://youtu.be/DRCEwy5XQSs

모짜르트 피아노 협주곡 No.21"Elvira Madigan" - 2nd Movement - Andan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