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조현용입니다.
‘쉬다’라는 우리말에는 ‘숨을 쉬는 것’과 ‘휴식’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휴식(休息)이라는 한자어에도 ‘쉬다’의 의미가 담겨 있죠. 정확히 말하자면 휴식이라는 단어에는 몸이 쉬는 것과 숨을 쉬는 것이 합쳐져 있습니다. 즉, ‘휴(休)’는 나무 그늘 아래에서 쉰다는 의미이고 ‘식(息)’은 숨을 쉰다는 뜻입니다. 흔히 쉬는 것을 노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우리말의 ‘쉬다’는 전혀 다른 세상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바쁜 일이 끝났을 때 ‘한숨을 돌리다’라는 표현을 합니다. ‘한숨’은 큰 숨을 쉰다는 의미로 걱정이 있을 때나 휴식을 취하게 될 때 하는 행위인데요. 왜 걱정이 있으면 한숨을 쉬게 될까요? 그것은 한숨이 치유의 행위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숨을 쉰다는 것이 곧 치유의 의미가 되기도 하는 것이죠. 요즘 치유라는 말이 유행인데, 숨만 잘 쉬어도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예전부터 우리는 숨을 쉬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 왔습니다. 단전호흡이나 복식호흡도 다 쉬는 행위이죠. 자신의 호흡을 들여다보는 것을 명상이라고도 하고, 참선이라고도 합니다. 이런 행위들은 모두 호흡 조절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요가나 간단한 스트레칭에도 호흡의 중요성은 매우 큽니다. 참선이나 명상을 하는 사람들은 깨달음과 비워냄을 위해서 치열하게 정진하는 것일지 모르나 제가 볼 때 그들은 참된 휴식을 하고 있는 겁니다. 쉰다는 것은 단순히 논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쉬는 것은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을 멈추어 보는 것입니다.
쉬는 것이 바빠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쉴 때도 무척 바쁩니다. 손에는 스마트폰을 놓지 못하고 있으면서 쉰다고 이야기하죠. 현대 세상에서는 쉬는 것도 바쁩니다. 어떤 사람은 쉴 때 할 일을 빼곡히 적어놓기도 하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쉬면서 다음 일을 계획한다고도 합니다. 정치인들도 휴가를 떠나며 무슨 구상을 하러 간다고 말하죠. 그런 사람들을 볼 때면, 차라리 푹 쉬고 돌아오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참된 휴식은 바빠서는 안 됩니다.
저는 쉬는 시간이 우리의 삶을 길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네카의 ‘인생이 왜 짧은가?’라는 책을 보면 우리의 인생이 짧은 것은 너무 바쁘게 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대로 쉬지 않으면 인생은 짧을 수밖에 없습니다. 늘 무언가에 쫓겨 살면서, 할 일에 치여 살면서 인생을 길게 살 수는 없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은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하지만 이 말은 인생을 길게 살기 위한 방법을 역으로 보여주는데요. ‘바쁘다’는 ‘밭다’와 ‘브’가 합쳐진 말입니다. 여기서 ‘밭다’는 잦다 혹은 짧다는 의미의 단어인데요. 기침을 밭게 한다고 하면 자주 한다는 의미이죠. 어떤 일을 계속 자주 해야 한다면 바쁠 수밖에 없습니다. 잦은 업무, 잦은 만남, 잦은 회식, 잦은 외출, 잦은 술자리는 우리 모두를 바쁘게 합니다.
‘바투’라는 부사는 ‘밭다’와 관련이 있는데요. 짧다는 뜻입니다. 줄을 바투 잡았다는 말을 줄을 짧게 잡았다는 뜻입니다. 늘 시간을 짧게 만드는 것은 우리를 바쁘게 만듭니다. 바쁘면 많은 일을 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시간을 짧게 만드는 일입니다.
우리는 그 동안 숨이 차게 달려왔습니다. 그래서 늘 숨이 가쁩니다. 모두 너무 바쁘기 때문에 숨이 가쁜 겁니다. 그래서일까요? 우리는 ‘숨조차 쉴 수 없다’는 표현을 자주 하기도 합니다. ‘숨을 거두었다, 숨이 멎었다’는 표현은 숨을 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쉰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의미입니다. 숨을 쉴 수 있기 때문이죠. 쉴 수 있어야 참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숨을 쉬는 것, 그리고 쉬고 나서 새롭게 일을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소중합니다.
잘 쉬고 나면 새 희망을 안고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사람이 귀하다는 것, 세상이 아름답다는 것, 지혜가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 참 휴식인 셈이죠.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지쳐있는 스스로를 발견한다면 좀 쉬어야 합니다. 그래야 인생을 길게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말 ‘쉬다’가 보여주는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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