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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조현용 교수~사과의 기술, 겸허히 반성하다.

  1. 사과의 어려움
살면서 가장 어려운 일 중의 하나는 아마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일 겁니다. 사람은 잘못을 인정하기도 어렵고 이를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분명히 잘못한 것이지만 잘못을 인정하고나면 그간의 내 삶이부정 당하는 것 같아서 잘못을 인정하는 것을 꺼립니 다. 그런 마음이 있으니 사과는 당연히 어려울 겁니다. 솔직하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 내 입을 나온 사과는 그대로 거짓이 될겁니다. 사과의 말을 하면서도 두렵습니다. 거짓투성이의 사과를 우리는 얼마나 오랫동안 해 온 것일까요?
반대로 진심으로 사과를 하면 내잘못임을 인정하는 것 같아서 사과를 얼버무리게 됩니다. 얼버무림은 잘못한 것은 알지만 인정은 하고 싶지 않은 이상한 마음 상태입니다. 사과를 하고 나면 책임을 져야 할 것 같아 두려운 마음입니다. 이것도 이상한 마음입니다. 잘못에 따르는 책임은 당연한 일이지만 사과는 해도 책임은 지고 싶지 않은 겁니다. 따라서 교묘하게 책임은 피하고 싶은 사과를 합니다.아마 법적인 문제가 걸려 있거나 후에 더 큰 추궁을 당할 위험이 있다고 생각하면 사과의 말 한마디도 더 조심하는것 같습니다. 종종은 사과를 하되 책임을 면하는 교묘한 사과를 배우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부추김도 있을 겁니다. 조언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사과의 말은 그래서 더 어렵습니다.


2. 어린 시절의 사과
우리말에서 사과는 주로 ‘잘못했어요.’라는 자 기 인식에서 출발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과의 말 은어릴때이후에는잘사용하지않는듯합니 다. 어릴 때는 자신의 잘못을 빨리 인정합니다. 그것이용서를받을수있는지름길임도알고있 습니다. 그래서 ‘잘못했어요.’라는 말 다음에는 ‘용서해 주세요.’라는 말이 따라옵니다. 물론 ‘한번만 용서해 주세요.’라고 말을 하여 강조하기도 합니다. 그러고는 ‘다시는 안 그럴게요.’라는 다 짐을 덧붙이기도 합니다. 종종은 지나고 보면 같 은잘못을되풀이하게되어그때그말이쑥스럽 기도 하지만 그래도 사과는 솔직했습니다. 잘못을 되풀이하였다고 해서 그때 우리의 사과가 진 실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내가 저지른 잘못 에 스스로 놀라, 잘못을 빌면서 눈물을 흘렸던 기억도 있습니다. 사과를 하면서 진심의 눈물을 흘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고 보면 사과하는 말의 원리가 간단하네 요.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진 심으로 용서를 빌고,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겠다 고 거짓 없는 다짐을 하면 사과는 이루어집니다. 이런 사과의 경우에는 받아들이는 쪽도 금방 용 서해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마음속에서까 지 용서하는 데는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말입 니다. 용서의 서(恕)는 같은 마음이라는 의미입니 다.사과하는쪽과받는쪽이같은마음이어야용 서가 이루어집니다. 진심이어야 통하는 겁니다.
어릴때일을돌이켜보면내가잘못했다고생 각하지 않았을 때는 끝까지 잘못했다는 말을 하 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자존심이었을까요? 내가 잘못한 일이 없는데 사과하고 싶지 않았습 니다.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는다고 더 혼이 났던 기억이 있지만 눈물을 흘리면서도 잘못을 인정 하지 않았던 시절이었습니다. 억울하다는 생각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어쩌면 그때의 마 음이 솔직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거짓으로 잘못했다고 말하면 그 순간이야 무 마되었겠지요. 그러면 나는 내 마음을 속인 게 됩니다. 그러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잘못을 인 정하지 않았기에 용서해 달라는 말도 하지 않았 습니다. 결과적으로 집이나 학교에서 벌은 받았 지만 끝까지 잘못을 인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어 린 시절의 자존심이네요. 불합리하다고 생각했 던 일은 끝까지 잘못을 빌지 않았습니다. 그냥 혼이났고,벌을받았습니다. 왠지눈물도좀났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때의 내가 안쓰러우면서도 기특한 것은 왜일까요?


3. 요즘 사과의 모습들
세상에 정보가 넘쳐납니다. 그래서일까요? 나 와그다지관련된일이아님에도사과의말을듣 게 되는 장면이 많습니다. 주로 정치인이나 연예 인, 운동선수들이 우리에게 사과를 합니다. 많은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들이기에 우리에게 사과를 하는 것이겠죠. 앞으로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싶 다는 마음이기도 할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사과는 좋은 것입니다. 사과는 궁극적으로 사랑 을 회복하는 일이니 말입니다.
잘못이 없는 사람은 없을 터이니 잘못을 했을 때는 사과를 해야겠지요. 그런데 사과의 말을 들 어보면 진정한 사과일까에 대해서는 의구심이있습니다. 일단 잘못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는 것 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사과의 기본 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이들의 사과처럼 ‘제가 잘못했습니다.’라는 말 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말을 듣기가 어렵습니다. 주로 사과의 말에 ‘의도하였든 의도 하지 않았든’과 같은 이상한 말이 붙습니다. ‘마음이 불편하신 분이 있었다면’과 같은 모호한 말 도 붙습니다. 정말 잘못을 인정한 걸까요? 잘못 했다는 말에는 다른 미사여구가 필요 없습니다. ‘제 잘못입니다. 죄송합니다.’면 충분합니다.
잘못을 인정했으면 그다음에는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그러고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노력 하겠다는 말을 해야겠죠. 그 이후에는 말보다 행 동일 겁니다. 다시는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고, 나와 상대를 실망시키지 않고, 서로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사과는 간단합니다. 사과의 핵심은 진심에 있습니다. 사과의 말이 길어지면 변명이 됩니다.긴말은 진심에서 멀어지는 일입니다.


4. 겸허히 반성하다
그런데저는요즘사과의말을보면서뭔가개 운하지 않은 느낌을 받습니다. 그 이유는 사과의 말에 군더더기가 붙어 있다는 생각 때문일 겁니 다. 그런 느낌을 주는 표현으로는 ‘겸허히’가 있 습니다. 유행어처럼 사과 표현에 쓰이고 있습니 다. 잘못을 인정하면 될 일인데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든가 겸허히 반성을 한다는 말을 합 니다. 겸손하게 반성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겸허’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겸허(謙虛)’라는 말은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비우는 태 도’라는 뜻입니다. 자신이 잘못해서 사과를 하는 것인데 나를 낮추고 비우니까 상대의 지적을 받 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잘못한 사람이 무슨 성찰의 과정을 거치고, 상대의 지적 을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 입니다. 아무래도 이런 말을 듣는 사람은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잘못을 한 사람은 이미 낮아진 사 람입니다. 그래서 낮출 필요가 없습니다.
굳이 설명을 한다면 ‘겸허히’는 반성하는 사람 의말이아니라반성을촉구하는사람의말이아 닐까 합니다. 따라서 표현은 ‘겸허히 반성하기 바란다.’ 정도라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있을 겁니다. 자신을 내세우느라, 체면 때문에 반성을 못하는 상대에게 스스로를 비우고 낮추고 반성 을 하라는 꾸지람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겸손이나 겸허의 의미가 자신을 낮춘다는 의미 가 아니라 자신이 낮음을 깨닫는 거라고 정의합 니다. 두 의미의 간격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겸손과 겸허는 깨달음입니다.


5. 사과에 필요 없는 기술들
물론 진실로 사과를 하였더니 더 어려운 상황 에 처하게 되었다는 한탄을 듣는 일도 있습니다.
세상에는 사과를 사과로 받지 않고 이용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도 저는 사과는 솔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과의 시작은 상대가 아니라 나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내 행동에 대해서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것이기 때문 입니다. 잘못의 인정과 반성이야말로 용서를 받기위한 시작입니다. 사과가 내 몫이라면 용서는 상대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사과는 잘못을 솔직 담백하게 인정하는 것입
니다. 미사여구를 동원하고, 내게 돌아올 지탄이 나 피해를 생각한다면 상대에게 내 마음은 전달 되지않습니다.어떤때는여러말보다어쩔줄 몰라하는내표정과나도모르게흐르는눈물이 사과의 참모습일 겁니다. 진심은 말보다 몸이 먼 저, 솔직히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사과의 방법을 이야기합니다. 사과의 기술을 소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과에는 기술이 없습니다. 사과에는 진심만 있을 뿐입니다. 그 이야기가 하고 싶은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