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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기행

안나푸르나에서 보내온 편지

  저 푸른 언덕너머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4,130m)가 희미합니다.
  얼마나 기대했던 광경인가?
  그토록 갈망했던 설산의 모습이 새벽 미명, 흰 구름에 싸여 다가오고 있습니다. 턱까지 차서 내뱉을 호흡마저 바닥나버린 가쁜 숨을 헉헉거리고, 이미 가슴속은 텅 빈 듯 미어지는 통증으로 목구멍까지 꺽꺽거립니다. 이제는 더 이상 걷기조차 힘든 다리를 끌고, 또 끌며 바로 눈앞에 보이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바라보며 잠시 숨을 고릅니다.   

  새벽 3시 일출을 보겠다고 떠났던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MBC 3,700m)’가 저 멀리 새벽안갯속으로 보입니다. “선생님 이제 다 왔어요. 조금만 힘내세요!” 가이드 카르나가 내뱉는 위로의 말은 이제 별 의미가 없습니다. 모든 말이 거짓처럼 내 몸을 부정적 카테고리 속으로 빠져들게 만듭니다. “아직 멀었을 거야, 그냥 위로하느라 하는 말이겠지...” ‘4,130m 고산증에 시달리며 마치 이 세상에 혼자 버려둔 사람처럼 중얼 그립니다.

  내가 올라왔던 그 길을 다시 돌아봅니다... 촘롱마을의 그 힘들었던 오르막길이 아련히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2,170m 고지를 향해 오르고 또 올라가며 여기서 그만 가면 안 될까... 를... 돼 뇌이며 얼마나 숨을 헐떡거렸던지... 촘롱마을의 로지(Lodge)는 백두산(2,744m) 보다 낮다는 말도 위로가 되지 않았던 그때의 생각이 떠오릅니다. 온몸으로 스며드는 피로에도, 작은 시골마을의 창 너머 떠오른 둥근달을 바라보며, “나는 누구인가? 나를 찾겠다는 다짐을 떠올리며 피로에 찌든 몸을 다시 움츠려봅니다.

  란드룩(Landruk)에서 촘롱(Chhomrong)으로 가는 길목, 킴롱콜라강 계곡 위 끝없이 긴 촘롱 와이어브리지(187m)를 오금을 저리며 건너야 했습니다.. 안나푸르나 남봉과 물고기 꼬리 같은 마차푸차레를 구름사이로 언뜻언뜻 보여주는 아름다운 ‘시누와 마을’과 ‘밤부로지’, ‘도반마을(2,500m)’까지의 여정은 잊기 힘든 추억입니다. ‘카르나는 힘든 여정가운데 산딸기를 따주며 좋은 친구가 되어줍니다. 우리나라 곰딸기와 비슷한 '어이세루(Aiselu, ऐंसेलु )'는 목구멍의 타는 갈증을 씻어줍니다. 숲길에는 네팔에서 신성시되는 피플 보리수나무(Peepal Tree)가 눈에 띕니다. 석가모니가 이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하여 힌두교와 불교문화를 아우르는 신성한 나무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도반마을에서의 하룻밤은 꿀맛 같은 잠이었습니다. 이제는 다시 히말라야(2,820m)로부터 2,000여 개가 넘는 끝없는 돌계단을 오르면, 데우랄리(3,210m) 마을 가까이에 지난 2020년 1월 17일 눈사태로 희생당한 교육봉사단 추모비가 보입니다.
  “네팔 교육봉사활동에 참가한 김숙자, 이민수, 정필봉, 최효원 선생님께서 이곳 안나푸르나에서 히말라야의 별이 되셨습니다. -따또바니교육봉사회 일동-”

  거의 반죽음에 이르러서야 MBC(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 3,700m)에 배낭을 풀고 구룽브레드(구룽족의 전통 빵)’툭바(네팔 국수)로 저녁을 때웁니다. MBC 언덕에 서면 내가 어디에 서있느냐에 따라 그 숲의 정체성은 달라집니다. 내가 서있는 숲은 임서기(Vanaprastha)인가? 유랑기(Sannyasa)인가?

  ‘사자소학거필택린(居必擇隣) 취필유덕(就必有德)’ 이란 문구가 어울리는 말일지는 모르지만, 안나푸르나 등정에서 만큼은 네팔형 한국인 박영주 선생과 네팔인 가이드 카르나는 나에게 擇隣이요, 有德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김인성 경남생명의숲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