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벌’은 우포의 옛 이름. 빛벌 가야의 후예인 창녕 사람들은 우포를 ‘소벌’로 부르기를 즐겨한다. 물이 질척한 늪(벌)에서 소(牛)를 먹이던 옛 추억이 생각나서 일 것이다. 그곳은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간 1억 4천만 년 전 태고의 늪, 생물다양성이 풍성한 곳이다. -
태고의 늪 소벌에는
'타악 탁' 씨방 터지는 소리 들리고
늪은 모든 것을 내어주고 받아들입니다.
5월 햇살을 받으며 초록물이 촉촉한 소벌을 걸어봅니다.
먼 산 바라기 하면,, 연두 빛 듬뿍 묻힌 붓으로 촌집 아이 부스럼처럼 드문드문 상수리나무군락이 그려지고, 늪을 따라 걷는 걸음이 나직해집니다.
봄비 머금은 왕버들 늘어진 가지 사이로 직박구리 소리 요란해지면, 햇살은 서늘해진 5월의 늪 그늘을 슬며시 치우기 시작합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왕버들은 늪에 빠진 듯, 솟은 듯 늪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소벌 사람들은 물안개 자욱한 늪과 함께 하루를 엽니다. 펠릭스 지엠의 늪 속으로, 새벽을 가르며 초록 융단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거룻배의 그림자 따라 백로의 날개 짓이 한가롭기도 하지요. 섬세한 어느 시인의 귀에는 타악 탁... 늪에 깃들인 식물들의 씨방 터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창녕군 유어면 우포생태교육원을 지나 고개 너머 감나무 정겨운 세진마을로 들어서면 우포늪생태관이 우뚝 서있고, 생뚱맞은 건물 사이로 닥나무가 정겨운 작은 시골길을 들어서면 미루나무 둑길 사이로 펼쳐지는 70만 평의 광대한 늪은 답답했던 가슴을 탁 트이게 만들어 줍니다.
더 넓은 늪을 바라보노라면 초록의 향연이 펼쳐지는 듯 새 생명이 움트고, 늪은 어머니의 젖가슴처럼 모든 것을 내어주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듯 평온합니다.
놀란 왜가리 날개 짓
연두 빛 왕버들 새순
태고의 기억이 켜켜이 쌓인 늪...
소벌은 네 개의 늪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가장 크고 넓은 소벌, 바닥이 모래 질로 이루어진 모래벌, 홍수가 나면 나무가 많이 떠내려 온다는 나무벌, 너무 작아 쪽지 같아 이름 붙은 쪽지벌입니다.
소벌로 가는 길은 여러 개의 늪처럼 여러 갈래입니다. 이번에는 장재마을 쪽으로 가보았습니다. 마을길을 따라 왕버들 군락이 맹그로브 숲처럼 우거진 나무벌을 지나고, 늪인지 풀밭인지 구분되지 않는 싱그러운 초록 수면 곁을 따라 걸으면 ‘푸른우포사람들’이 있는 소목마을이 한가롭습니다.
엎드린 소의 목을 뜻한다는 소목마을, 우항산(牛項山) 언덕길을 오르면 울창한 소나무 숲이 솔향기를 내뿜고, 발걸음에 놀란 왜가리의 날개 짓을 들으며 숲을 뒤로하면, 나무벌 둑길이 가슴을 탁 트이게 만들어줍니다.
잠시 시원한 둑 바람을 쏘이면 곧 소벌초지에 다다릅니다. 초지는 온통 매자기와 솔방울고랭이가 지천이며, 깜찍하고 귀여운 유럽쥐손이풀과 자줏빛 구름 그림자 자운영이 촉촉이 젖은 발끝을 간지럽힙니다.
왕버들 부드러운 연두 빛 새순들이 이마를 간질이는 숲길을 잠시 걸으면, 이윽고 잔잔한 물결이 싱그러운 바람결에 흔들거리는 소벌에 다다릅니다.
태고의 기억이 켜켜이 쌓인 소벌은 경이롭기 그지없습니다.





















'숲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숲기행~흙돌담이 고운 성주 한개마을 (0) | 2020.08.29 |
---|---|
숲기행~남해 물건방조어부림을 찾아서 (0) | 2020.08.10 |
숲기행~개비리 길을 걷다 (0) | 2020.06.24 |
숲기행~울릉도 숲길을 걷다 (0) | 2020.04.03 |
숲기행~노도를 걸으며 (0) | 2019.1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