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숲길걷기

삿포로 걷기~니시오카 숲을 걸으며

우리는 나무를 보며 아무 생각 없이 말을 할 때가 많습니다.
이 나무는 수피가 특이해서,
저 나무는 잎이 갸름하고 예뻐서,
그 나무는 알맞게 굽은 몸매가 멋있어서, 라고 말합니다.
나무는 지금의 모습을 위해 오랜 세월을 속이 문드러지는 아픔과 추위와 해코지를 이겨왔는데,
수십 수백 년의 세월을 견뎌온 인고(忍苦)의 삶을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은 잠시 서서 자신의 생각으로 말해버립니다.
나무는 참 한심했거나, 서운했겠지만...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서서 그저 가만히 바라봐줍니다.
가는 가지 끝의 떨림으로 말해줍니다.
자신을 향한 철없는 생각을 다독거려 줍니다.

니시오카공원은 커다란 수원지를 중심으로 츠키사무 강과 상류지역의 습원, 그리고 울창한 삼림이 우거져 느리게 걸으며 생각에 잠길 수 있는 한적한 숲길입니다.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에는 촉촉이 젖은 낙엽 사이로 작은 물속 벌레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물기 자박한 풀잎 사이로 이름 모를 습지식물과 앉은부채’, 잠자리애벌레, 애반딧불이가 봄을 기다립니다. 숲에는 텃새와 나그네새가 함께 어우러져 지휘자 없는 합창 연습으로 시끄럽습니다.
수원지(水原池)는 메이지 당시, 츠키사무 강을 막아 만들었고, 수도시설로 사용되었다가, 1971년 폐쇄되면서 지금은 생태연구, 자연관찰 장소로, 카메라를 맨 사람들이 느리게 걷고 있습니다.

니시오카 숲에는 장로의 나무가 한그루 서 있습니다. 나무 아래 서면 세월의 묵은 향기가 평안과 쉼을 줍니다. 연륜만큼 오래된 갈등은 소통과 배려의 물결을 따라 흔들리며, 잔잔해집니다.
소통은 가만히 끄덕이는 고개 짓입니다.
남의 말을 잘 들을 줄 안다는 것은 참 아름다운 배려입니다.

말도 안 되는 어린아이의 서툰 표정과 말을 엄마는 참 잘 알아듣습니다.
아이를 향한 어미의 사랑이 없다면 어떻게 그 어려운 언어를 해석하겠습니까?
내 배가 아파 낳은 그 생명을 지극히 사랑하다 보니 말도 안 되는 그 아이의 말을 반듯한 문장으로, 화사한 웃음으로 만들어 내는 능력을 이 세상 엄마들은 가지고 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이 천사를 이 땅에 내려 보내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도와주라 했는데, 천사가 바빠서 도무지 도움을 줄 수조차 없어... 이 땅에 어머니를 만들어 천사의 일을 대신하게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머니는 위대한 사랑꾼입니다.
소통의 대가입니다.
어린아이를 향한 엄마의 마음으로 세상의 어리석은 말을 들어주고, 이해하고, 감싸준다면, 살맛 나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나무는
그런 어머니의 사랑에 더해, 묵묵히 참아주는 여유를 베풀어줍니다.
나무는 어떤 말을 하더라도 다 들어주고, 다 받아줍니다.
그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나무는 스스로 깨닫는 지혜를 가르쳐줍니다.
소통은 잘 들어주고 스스로 깨닫게 만드는 행위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가끔은 마음이 너무 답답해서 아무 말이라도 지껄여야 내 속의 울화를 풀 수 있을 때도 있는데,
나무는
그런 류에서 들어주기 전문가입니다.
그리고
나무는 말없이 묵묵히 서 있기만 합니다.
그런 나무의 모습에서 지혜로운 스승의 모습을 봅니다.
미친 듯 지껄여대는 어리석은 자의 넋두리를 하염없이 들어주며 묵묵히 서 있는 저 넓은 아량에서 스승의 인자한 모습을 봅니다.

지금 사회는 세대 간, 계층 간, 지역 간에 상대방의 말을 듣기보다 자신의 말에 빠져들어, 오히려 상대방이 자신의 말을 수용해주기를 강요하는 사회가 되어버렸습니다.
사전에는... 들을 청(),
듣다, 자세히 듣다, 기다리다, 받다, 받아들이다, 허락하다, 기다리다, 맡기다, 살피다.’
라고 표기되어있습니다.

(귀 이) + (북방 임) + (열 십) + (눈 목) + (온통 일) + (마음 심)
여럿의 이야기를 열개의 눈으로 온 마음을 보는 듯 신중히 듣다.

백련초해(百聯抄解)의 문장에 보면,
細雨池中看 - 가랑비는 못 가운데서 볼 수가 있고
微風木末知 - 산들바람은 나무 끝에서 알 수 있다네.
花笑聲未聽 - 꽃은 웃어도 소리는 들리지 않고
鳥啼淚難看 - 새는 울어도 눈물은 보기 어려워.

보일 듯 보이지 않는 가랑비는 동그랗게 퍼져나가는 물결을 보면 알 수 있고, 귓불을 스치는 산들바람은 알 수도, 느낄 수도 없지만, 살랑살랑 흔들리는 나무 가지를 통해 바람이 불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꽃이 웃는다고 말하더라도 사람처럼 웃는 것이 아니라, 꽃의 향기로 듣고, 새가 운다고 말하더라도 새는 노래하므로, 그 울림에서 맑게 흐르는 눈물을 느껴 볼 수 있습니다.

삿포로에는 오래전부터 말을 잊은 느릅나무들이 우뚝우뚝 서 있습니다.
나무 아래로 걷다 보면 참 행복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사람은
왜 하필이면 삿포로에 가서 그런 생각을 하느냐고 되묻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가만히 바라보며,
잔잔한 미소와 함께 그냥 묵묵히 서 있을 것입니다.
오래된 나무처럼 말입니다.

참 소통은 자신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비우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니시오카 숲길을 걸으며 내 마음의 묵은 찌꺼기가 비워지고, 잔잔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마가목 열매에 심취한 개똥지빠귀

장로의 나무
비오리의 유영

 

한가한 비오리 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