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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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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숲~어미나무의 숲 차가운 바람이 어깨를 옴츠리게 합니다. 어머니를 떠나보낸 후 폐가처럼 변해버린 허전한 마음은 스스로 고아가 되었음을 알게 해 줍니다..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베란다를 바라보며 잠시 옛 기억을 더듬어 봅니다. 어느 마을이나 오래된 나무 한그루 없는 곳이 없듯, 내가 살던 산동네 언덕 숲에도 큰 상수리나무 한그루 서 있었습니다. 늘 그랬듯이 그 나무 아래 서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마치 어머니 곁에 기댄 듯, 나무 아래에 서면 즐거웠던 유년시절이 생각났기 때문일 겁니다. 그저 평범한 나무 한 그루이지만,, 나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뭔가를 그 나무는 알고 있는 듯합니다. 나무의 언어 상수리나무도 이제 묵묵히 겨울을 준비합니다. 떠들지 않고 말없이 나무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습니다. 나무들과의 대화..
치유의숲~어머니의 빨간 지갑 어머니는 추석 전날에 푸른 하늘길을 떠나셨습니다. 떠나시기 전 어머니는 애타게 빨간 지갑을 찾으셨지요. 평소 늘 허리춤에 지니고 있었던 그 빨간 지갑에는 고무줄로 꽁꽁 묶은 지폐 몇 장과 함께 어머니의 추억 부스러기들이 가득 들어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빨간 지갑을 찾았던 이유는 그 지갑 속에 있는 지폐 몇 장을 평소 자기에게 친절했던 간병인에게 추석 보너스로 주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고무줄에 묶였던 지폐는 아들인 내가 어머니 간병을 위한다는 이런저런 핑계로 다 써버린 후였습니다. 마지막까지 다 파먹고 텅텅 비게 만든 빨간 지갑을 생각하며 자식인 나의 마음은 얼마나 부끄러웠는지요. 나는 슬며시 뒤로 돌아 내 가난한 지갑에서 지폐 두 장을 꺼내 어머니께 싱긋 웃으며 건네주었고, 곧 그 지폐는 간병인..
치유의숲~도토리가 떨어진 숲 감천고개 너머로 산들바람 불어올 때면 어린 시절의 만날고개 숲길은 갈 곳 없는 산동네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곤 했습니다. 우르르 몰려다니다가 버려진 나뭇가지 하나 주워, 보물이라도 발견할 듯 하릴없이 수풀을 휘저으면 풀잎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도토리 몇 알에 어린 가슴이 콩콩거렸지요. 저녁놀이 감천골에 걸릴 때쯤이면 어느 듯 깃 낡은 내 주머니는 다람쥐 볼처럼 볼록해집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빨라지고, “아이고, 이렇게 많이 줏었구나.”하는 어머니의 다정한 목소리가 아직도 귓전을 맴돕니다. 가을이 오는 숲 어린 눈에도 가을산 위에 걸쳐진 하늘은 왜 그다지도 푸르던 지요. 산모퉁이 돌아 나온 산들바람이 귓불을 스치면 땀에 젖은 겨드랑이는 뽀송뽀송해집니다. 잎사귀 사이로 스치는 바람소리가 커지기 시작..
치유의숲~숲새의 지저귐 얼마 전부터인가 월요일이 되면 가까운 숲길을 걷는 묘한 습관이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퇴직 후 무료함을 달래 보려는 핑계의 억지 걸음이었지만, 이제는 비가 와도 월요일이면 몸이 저절로 일어나 숲으로 갑니다. 그저 혼자 가기 심심해서 동무를 초대한 것이 이제는 무려 십여 명의 무리가 되어버렸고, 숲을 벗어나 헤어질 무렵이면 가족처럼 또 보고 싶어 월요일을 기다립니다. 우리는 ‘월숲’이라는 핑계로 우르르 몰려다니는 숲새처럼 또 숲으로 걸어 들어갈 요량을 모색하는 천진난만한 숲 친구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숲길에서 만나는 새 숲길을 걸으면, 우리를 가장 먼저 반기는 소리는 영혼을 방금 세탁한 듯 맑은 새소리입니다. 어떤 이론을 내세워도 새의 노래가 기쁨을 준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새에 대한 지식의 정..
치유의숲~길 떠남 길을 떠난다는 것은 일상을 털어버리는 것. 삶이 무겁고 지루해지면 내 마음속에 그렸던 작은 원을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처음엔 알맞은 크기의 원이라 여겼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굴레가 나를 억누릅니다. 이제는 그 흔적을 지우고, 또 다른 원을 그리기 위해 길을 떠나봅니다. 길을 걷는 것은 세상에 대한 깊은 인식과 만남의 대상을 향한 경외를 불러일으키는 우아한 생각을 배울 수 있어 좋습니다. 자연과 더불어 길에 남아있는 오래된 발자취를 떠올리고, 아름다움과 평온함에 대한 동경을 통해 깊은 내면의 만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 몽골의 초원은 우리의 들길과는 다른 느낌을 줍니다. 끝없이 펼쳐진 풀밭 사이로 가물가물 이어지는 들길은 어디로 이어지는 길인지 궁금합니다. 그 길을 따라..
치유의숲~숲의 빛깔 7월의 숲은 짙은 초록입니다. 아침을 깨우는 햇살이 눈부시면 숲은 기다린 듯 온몸을 부르르 떱니다. 조붓한 오솔길을 따라 걸으면 숲은 새들의 맑은 지저귐과 함께 연초록으로 눈부십니다. 초록의 유혹은 끝없이 걸음을 재촉하게 만들고, 이윽고 한낮의 강렬해진 빛은 숲을 다시 짙은 초록빛으로 물들게 합니다. 스펙트럼의 마술은 오묘하여, 저녁 석양빛을 받은 숲은 은은한 녹갈색의 어둠이 깃듭니다. 그리고 숲은 너그럽게 우리를 안아줍니다. 숲을 채우는 빛깔 숲은 초록의 대명사라 할 만큼 우리에게 '초록'이 주는 인상은 짙습니다. 노랑과 파랑이 어우러진 초록은 우리의 마음을 참 편안하게 만들어줍니다. 환희와 강렬한 에너지를 나타내는 노랑을 삶의 풋풋한 여정이 주는 즐거움이라 한다면, 숲 언저리로 언뜻언뜻 보이는 파란 ..
삿포로걷기~놋포로 숲에서 보내온 편지 숲은 초록초록 여름에로의 열정을 쏟아냅니다. 나뭇잎 사이로 눈부신 햇살이 내려 쪼이면, 숲은 순식간에 밝은 연둣빛 세상을 연출합니다. 아바타의 한 장면처럼 숲은 다양한 배경화면을 연출하며 온갖 생명을 풀어놓고, 나비족의 DNA를 섞어 만든 아바타를 숲으로 불러들일 때, 낯선 한 사람이 바쁜 걸음으로 오솔길 너머로 사라지는 모습이 눈에 띕니다. 세상에는 참 바쁜 사람이 많습니다. 저렇게 바쁜 사람이 왜 숲길을 찾았는지 잠시 생각해봅니다. 숲길을 걷는 것은 잊었던 기억을 떠올리고, 그 기억을 슬며시 들여다보는 한가한 행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굽은 길을 이리저리 걷다 보면 또 다른 나의 눈 하나가 내 안에 있음을 느낍니다. 그 눈은 바쁜 내 일상의 바깥에서 낡은 나무상자 속의 어릴 적 물건을 찾아내듯, 시..
치유의숲~숲에서 나는 소리 초여름 숲길을 걷다 보면 풀숲 사이로 들리는 작은 소리에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멈추어집니다. 강아지풀잎에 흐르는 물방울 소리, 늦깎이 움터지는 소리, 애기똥풀 씨방 벌어지는 소리, 단풍나무 물오르는 소리, 나뭇가지를 스치는 바람소리, 가지 사이로 나는 작은 새 날개 짓 소리, 졸음이 깃든 산사의 청아한 염불소리. 숲을 채우는 소리 좋은 사람들과 함께 숲길을 걷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지만, 가끔은 혼자 걷는 숲길이 또 다른 기쁨을 줄 때도 있습니다. 숲 언저리에서 만나는 앙증스러운 풀꽃들의 흔들림은 무료한 시선을 빼앗기 충분합니다. 걸음을 멈추고 오도카니 앉아 그 흔들림을 내려다보면 형언할 수 없는 짜릿한 선율이 몸을 감쌉니다. 마치 말을 걸 듯 다가오는 그 표정 속에 참 많은 사연이 있는듯합니다. 작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