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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숲

치유의숲~숲새의 지저귐

얼마 전부터인가 월요일이 되면 가까운 숲길을 걷는 묘한 습관이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퇴직 후 무료함을 달래 보려는 핑계의 억지 걸음이었지만, 이제는 비가 와도 월요일이면 몸이 저절로 일어나 숲으로 갑니다. 그저 혼자 가기 심심해서 동무를 초대한 것이 이제는 무려 십여 명의 무리가 되어버렸고, 숲을 벗어나 헤어질 무렵이면 가족처럼 또 보고 싶어 월요일을 기다립니다. 우리는 ‘월숲’이라는 핑계로 우르르 몰려다니는 숲새처럼 또 숲으로 걸어 들어갈 요량을 모색하는 천진난만한 숲 친구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숲길에서 만나는 새

숲길을 걸으면, 우리를 가장 먼저 반기는 소리는 영혼을 방금 세탁한 듯 맑은 새소리입니다. 어떤 이론을 내세워도 새의 노래가 기쁨을 준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새에 대한 지식의 정도가 많건 적건 그 기쁨은 경탄의 대상입니다.
몽골의 새소리는 우리 숲의 새소리와 사뭇 다릅니다. 적절치 않은 비교인지는 모르지만, 드문드문 들려오는 몽골의 새소리는 감성과는 거리가 먼 (call)’에 가깝다면, 우리 숲 속은 새들의 노래가 마치 (song)’을 하듯 감미롭습니다. 그것은 아마 몽골에 비해 우리 숲의 환경이 사랑을 나누기에 훨씬 적절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새는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가 봅니다. 은쟁반을 구르는 구슬처럼 영혼의 맑음을 소리로 표현합니다. 종종 거친 내 목소리가 저 새소리를 닮을 수는 없을까? 푸념을 해봅니다. 기회가 닿아 가끔 내가 했던 말을 녹음해서 들어보면 얼마나 거슬리는지요. 그래서 스스로를 확인하기 위한 방편으로라도 가끔은 내 목소리를 들을 기회를 가지는 것이 세상을 맑게 살아가는 방법이라 되새겨봅니다.

새는 왜 노래하는가?

새소리를 그들의 언어라 여기면 우리는 새의 세계를 이해하는 일에 혼란을 겪겠지만, 그저 생명을 노래하는 음악이라 여긴다면 우리의 마음은 한결 편안해질 겁니다. 새는 생존을 위해 새끼일 때 반복적 학습을 통해 익힌 노래를 평생 부르게 됩니다. 왜냐면 그들에게는 사람처럼 집단학습을 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람도 평생교육의 대부분이 가정교육의 영향을 많이 받음을 간과할 수는 없습니다. 새와 사람도 그런 점에서 따로 두고 판단할 개체는 아닌 듯합니다.
음악의 세계는 말로 표현하기 쉽지 않은 영역인데 하물며 인간과 별개인 새의 노래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 인간적인 방법으로 헤아리려 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새는 왜 노래하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새는 세력권을 지키고 어울리는 짝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노래한다고 하겠지만, 어쩌면 그것은 인간 중심의 일방적인 판단일지도 모릅니다.

전원 교향곡의 새소리

음악의 문외한이지만 얼마 전 베토벤의 6번 교향곡 전원을 들으며 어린 시절 뛰놀았던 뒷산의 숲을 느끼고 감상에 젖었던 적이 있습니다. 특히 2악장은 시냇물이 흐르는 개울가로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이 지저귀는 새들의 노래를 연주했고, ‘시냇가의 정경을 그대로 오케스트라 연주장으로 이끌어와 개울이 흐르고 숲의 새소리가 울리자, 지휘자 번스타인의 표정은 릴랙스 된 평온함으로 넘쳐 보였습니다.
사람들은 결국 자연으로부터 만들어진 목관과 현으로 자연의 소리를 모방하려 애쓰는 듯했습니다. 음악 애호가들의 감동을 위해 연주장에 자연의 소리를 가져오기까지 연주자들의 수고가 참 많았을 것 같습니다.

마음을 치유하는 새소리

일반적인 인식으로는 새의 뇌는 용량이 매우 적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작은 뇌의 많은 부분이 노래하기 위한 표현과 기쁨에 할애되어 쓰이는가를 생각해본다면, 새가 노래할 때마다 그 속에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영혼의 소리와 그로 인한 완벽한 귀의(歸依)의 기쁨이 스며있을 것입니다.
새의 노래가 어떤 진화의 과정을 통해 아름다운 소리를 내게 되었든 간에, 그토록 다양한 프레이징(phrasing)을 만들어낼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하기에는 이론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많을 것입니다.

청아한 새소리는 임의적인 것이 아니라 필연적 내림처럼 보입니다. 숲길을 걸으며 명랑하면서도 의미심장하고, 반복되지만 오히려 충만한 새의 노래를 들으며, 세상적인 일로 불편했던 마음을 치유해봄도 좋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