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바람이 어깨를 옴츠리게 합니다. 어머니를 떠나보낸 후 폐가처럼 변해버린 허전한 마음은 스스로 고아가 되었음을 알게 해 줍니다..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베란다를 바라보며 잠시 옛 기억을 더듬어 봅니다.
어느 마을이나 오래된 나무 한그루 없는 곳이 없듯, 내가 살던 산동네 언덕 숲에도 큰 상수리나무 한그루 서 있었습니다. 늘 그랬듯이 그 나무 아래 서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마치 어머니 곁에 기댄 듯, 나무 아래에 서면 즐거웠던 유년시절이 생각났기 때문일 겁니다. 그저 평범한 나무 한 그루이지만,, 나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뭔가를 그 나무는 알고 있는 듯합니다.
나무의 언어
상수리나무도 이제 묵묵히 겨울을 준비합니다. 떠들지 않고 말없이 나무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습니다. 나무들과의 대화는 말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저 숲과 숲을 바라보는 우리와의 관계에 대한 이해를 다른 시각으로 바꾸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디언들은 나무를 ‘인간의 영적교사’라고 부릅니다. 그것은 나무가 인간보다 훨씬 먼저 이 세상에 왔기 때문이며, 또한 어떻게 적응하면서 살아야 할지 아는 것 때문 일 겁니다.. 우리는 나중에 왔을 뿐 아니라 자연 속에서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능력도 훨씬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디언들은 나무의 삶을 통해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배웁니다. 나무는 우리처럼 논리적인 언어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자연의 변화를 직감적으로 감지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뿌리들의 대화
숲의 근원은 수풀이며, 나무는 흙에 뿌리를 내리고 삽니다. 나무의 대화는 뿌리에서도 이루어지는데, 뿌리는 숲 바닥 생태계에 생물학적 연결통로이자 조용한 화합을 이루는 흰 균사체와 어우러집니다. 그물처럼 뻗어 내린 하얀 균사망은 지하의 상리공생을 통해 끊임없는 상호작용으로, 숲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시켜 줍니다.
수풀 속에는 삶의 중심을 이루는 어미나무가 한그루 있습니다. 이 어미나무는 자라나는 어린나무들과 소통하여 새로운 세대의 어린나무를 잘 지켜 건강한 숲을 이룹니다. 어미나무의 뿌리 곁에는 수백 그루 어린나무의 뿌리가 연결되어 살아가고, 어린나무들이 자랄 공간을 내어주기도 합니다. 어미나무는 가끔 그 생을 다할 때 자신이 가진 생의 지혜를 다음 세대 어린나무에게 전해주기도 합니다. 숲의 나무들은 이렇게 대화하여, 공동체 전체의 회복력과 탄력성을 높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들 사회 공동체와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숲은 단순히 나무들만이 모여 있는 것은 아닙니다. 숲의 중심부와 연결망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시스템이며, 이 연결망은 서로 겹쳐져 나무들을 이어주고 소통하게 합니다.
숲의 다살이
모든 어머니는 자신이 자식보다 먼저 이 세상을 떠나시기를 원하고, 또 그렇게 자연의 섭리를 따르기를 원하십니다. ‘죽음’이라는 미지의 세계가 어린 자식이 가기에는 멀고도 까마득한 곳이라 여겨졌기 때문 일 겁니다.. 어머니 자신이 먼저 가셔서 불안해하는 자식을 포근하게 안아 주어야 한다는 모성애가 발동했기 때문이겠지요.
어머니의 마음은 참으로 깊고도 깊습니다. 하지만 숲의 나무는 그 자식나무를 위해 먼저 가지 않고 그 자식나무가 잘 자랄 때까지 지켜 보호합니다. 어머니의 가슴처럼, 어머니의 손길처럼, 어미나무의 뿌리는 자식나무를 감싸줍니다. 나무는 우리들의 삶에 비해, 죽음에 대한 생애(生涯)의 제한에 좀 더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숲의 강점은 놀랍도록 뛰어난 자가 치유의 능력입니다. 어미나무의 종 보존 능력과 다양한 유전자형의 되살림은 균근 연결망을 아주 빠른 속도로 회복 가능하게 만들어줍니다. 어머니 나무의 지혜가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도록...
비록 어머니는 돌아가셨지만 우리의 마음 한편에 계셔주셔서, 유년시절을 기억하게 만들어 남은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 주시는 역할은, 숲의 어미나무 같습니다. 그 어머니에게도 치유의 어머니가 필요했다면 고운 참빗 머리에 곶감을 이고 오셨던 외할머니였을까요?
이제 잎이 떨어진 나뭇가지는 뾰쪽하고 날카롭게 겨울 하늘을 향하지만, 칼끝처럼 불안하거나 위험하지 않습니다. 그 끝이 겨울을 치유하는 봄으로 향해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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