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좋은 글

가곡 부르기의 즐거움

"어떻게 하면 높은 소리를 잘 낼 수 있을까요?"
남재현 선배님께 넌지시 물었습니다.

"글쎄...
그게 참 어려운데...
문득 깨달은 음역을 잘 기억했다가, 부단한 인내로 찾아내고,
거듭 되풀이되는 연습을 통해 내 것으로 만들어내는 작업이 아닐까...
참 어렵기는 하지, 나도 잘 안되니까..."

"시간이 나면 자네하고 인문학공부를 같이하면 좋겠는데...
우리 같이 시간을 만들어보세."
틈이 날 때마다 골목을 걸으며 나누었던 말입니다.
함께 걷는 나는
그 느릿한 말씀 속에 스민 그분의 향기를 맡습니다.
걷는 뒷모습이 수채화처럼 아련히 번집니다.

그분의 죽음을 뜻밖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이미 예견된 죽음인지도 모릅니다. 선배님은 만날 때마다 늘 자신의 건강상태를 불안해했기 때문입니다.
그 불안의 너머에 도사리고 있는 죽음의 그림자를 미리 바라보며, 그는 적어도 우리의 불안에 비해 좀 더 죽음에 가까이 서 있었을 것입니다.
'불안한 나는 극히 정상이다'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불안해하는 내담자를 위한 위로의 말일 것입니다.
불안은 누구나 겪는 죽음에로의 막연한 검은 그림자.
'불안하지 않으려 애쓰지 마라. 불안은 불안의 내면에 존재하는 필연이니, 차라리 불안할 때 노래하라.'
노래하는 동안은 내 마음이 평안해지고, 즐거워질 것입니다.

정현종 시인은 '방문객'이라는 시에서...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마음을 볼 수 있을까?
마음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귀에 들리지도 않지만,
불안은 마음에서 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음은 우리에게는 불안을 떨칠 수 있는 작은 그릇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 작은 그릇에 맑은 영혼이 담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나는 김효근 선생의 내 영혼 바람되어(A Thousand Winds)라는 노래를 좋아합니다.
'그대 아침 고요히 깨나면, 새가 되어 날아올라, 밤이 되면 저 하늘 별빛되어 부드럽게 빛난다오
그곳에서 울지 마오 나 거기 없소, 나 그곳에 잠들지 않았다오.'
영혼은 관찰할 수 있는 대상은 아니지만, 마음의 눈으로는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사야 54장 1절에서는 '잉태치 못한 자 들아 노래하라, 잉태치 못하며 생산치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구로치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내 마음을 위로하는 통로는 노래하는 것입니다. 노래하면, 기쁨이 나를 환대할 것입니다.
노래하면 마음이 즐거워지고, 그 깊고 아름다운 시어를 통해 하늘이 감동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젊은이들의 삶을 사로잡고 있는 '영끌'도 불안으로부터 오는 기작입니다. 불안하기에 앞서 기쁨의 시간을 늘려가면 불안은 점점 멀어지기 마련입니다.
옛사람들은 그들의 고통을 하늘에 고했고, 그 통로를 '솟대'로 했습니다.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을 새를 통해 하늘에 전달했고, 하늘의 뜻은 이 새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졌다고 합니다. 노래는 우리가 하늘을 향해 외치는 기도일 것입니다.

'노래하는 자 복이 있나니, 그는 영원한 기쁨을 얻을 것이오.'
노래는 백색소음을 인위적으로 구체화하되, 아름다운 음률로 체계화한 것입니다.

우리는 결국 흙으로 돌아가고, 뒤따르는 사람들이 다시 그 흙을 밟고 걸을 것입니다. 그러니 죽음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너무 불안해 마십시오. 일상을 누리며 즐겁게 노래하며 살면, 그곳이 곧 낙원입니다.
나는 요즘 창동에 있는 '이은문화살롱'에서 가곡을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살롱문을 들어서는 순간 그 시간과 더불어 들어오는 내 '마음'은 행복합니다.
눈으로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지만, 지금껏 살아오는 시간 속에서 수없이 부서졌을 마음,
그 마음을 포근히 감싸주고, 또닥거려 주는 가을바람처럼,
오늘도 문을 열고 지친 발걸음으로 들어오는 나를 편안하게 맞아주는,
가곡의 선율이 따스한 환대가 됩니다.

새로운 별을 발견하는 것은 인류의 역사를 바꾸는 일이라지만, 노래를 통해 새로운 영혼을 발견하는 것은 불안했던 우리의 일상을 기쁨으로 바꾸는 놀라운 일입니다.
가곡을 부르면 가을바람처럼 맑은 영혼이 내게로 다가옵니다. 쉼도 여유도 스치는 바람처럼 오기 때문입니다.
가곡을 부르는 맛이란 취나물을 씹듯 쌉쌀, 상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