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 석자에는 '仁'이란 글자가 있습니다. 사람 '人'에 두 '二'를 더한 글자. 풀이하면 '마음 씀씀이가 야박하지 않고 어질거나, 세상의 모든 것을 한 몸으로 여기고 베푸는 마음 혹은 그러한 행위'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仁'이라는 한자 때문인지는 몰라도 지금껏 세상살이를 내 본성과는 달리 힘들게, 불편하게 살아온 것 같아 지금에 와서는 뭔가 손해를 본 듯한 느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어릴 적부터 이름대로 살아야 한다는 의무감, 속박감 때문에 남의 부탁을 매정하게 뿌리치거나, 크게 모난 짓을 할 수 없었던 기억. 물론 상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시코츠호를 걸으며 이제는 내 멋대로 살아보고 싶은 마음에 이것 저것 새로운 생각과 계획을 세우지만, 둘레의 화산으로부터 녹은 눈이 조금씩 흘러 들어와 푸른 호수가 되듯 오랫동안의 삶의 방법이 하루아침에 고쳐지거나 변화되기는 참 어려운가 봅니다. 호숫가를 함께 걸으며, 같이 걷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이 쉽지는 않음을 느낍니다. 더군다나 내 몸과 마음의 상태가 온전하지 않으면 자신의 고통은 물론이고 상대방의 아픔과 속마음을 짐작하거나 공감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사람은 심사가 틀리면 제 갈길을 가버리지만, 자연은 오래 전이나 오늘이나 한결같습니다. 4만 년 전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시코츠호도 예외는 아닙니다. 아키타현의 '타자와 호수'에 이어 일본에서 두 번째로 깊어 '거대한 물항아리'라고 불리는 이 호수는 둘레 약 40km, 최대 깊이 약 360m입니다. 그 깊이로 인해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어는 일이 없어 '일본 최북단의 不凍湖'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에서 가장 깨끗한 호수 중의 하나인 시코츠호는 에니와다케, 훗푸시다케 화산의 분화물이 물길을 막으며 형성된 호수로 오코탄페강을 거쳐 시코츠 호수로 흘러 들어가는 '오코탄페 호수'와 타루마에산의 분화에 의해 생긴 용결 응회암이 침식되어 양측 암벽에 30종의 이끼가 환상적인 초록빛 세상을 만들어 내는 '코케노 도우몬', 가문비나무와 분비나무가 정상 근처까지 이어져 숲을 더욱 다채롭게 만드는 '훗푸시다케', 완만한 산 위에 만두 모양의 돔에서 아직도 화산 가스를 분출하는 활화산 '타루마에산' 등 1,000m를 넘는 산과 숲이 시코츠호의 푸른 물결과 어우러져 참 맑고 아름답습니다.
좁다란 숲길에는 낯선 애조가(愛鳥家) 한 사람이 카메라를 매고 힘없이 걸어갑니다. 어젯밤 서로 몸을 부비며 잠들었을 '와인색 코트 눈빛 머리'-'흰머리오목눈이(Long-tailed Tit)'를 아침 내내 기다리다 지친 모습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 해도 자연은 쉽사리 그 속살을 내어놓지 않습니다. '야생조류 관찰로'를 걸으며 사람도 자연처럼 욕심을 버리고 한결같은 삶을 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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