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남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덕숭산 기슭 ‘수덕여관’은 충청남도 기념물 제103호, ‘이응노 선생 사적지’로, 여관을 중심으로 그쳐간 수많은 묵객을 통해 한 편의 소설 같은 이야기가 있는 곳, 한국미술의 거장 ‘고암 이응노 선생’, 고암 선생의 스승이자 신여성 ‘나혜석’, 그녀의 친구 ‘일엽 스님’의 이야기가 얽힌 삶의 현장이자 역사의 장이기도 합니다. -
흰 눈이 내린
수덕여관에는
여류 서양화가 나혜석이...
흰 눈이 내린 다음날 아침 수덕사를 오르는 길은 눈부신 아침 햇살로 가득합니다. 떨기나무 사이로 참새들이 재잘거리고, 툭툭 잔설 떨어지는 소리가 한적한 숲 속 찬 공기를 가릅니다.
저 아래 길에서 오르는 방문객의 두런거리는 대화 속으로 나혜석의 숨소리도 함께 들리는 듯합니다. 관습적 고립으로 인해 지친 그녀의 눈빛은 아침햇살로 인해 반쯤 감겨 어둡고, 젖은 발걸음은 짓누르는 사회적 편견으로 무거웠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 서양화가 나혜석(1896∼1948)은 ‘자유연애’, ‘남녀평등’으로 여성인권운동의 선구자였습니다. 첫사랑 남자의 요절 후 10살 위인 변호사 김우영을 만나지만 남편이 유학을 떠난 후 남편의 친형제 같은 친구 최린과 불같은 사랑에 빠져 결국 이혼의 아픔을 당하게 됩니다.
그녀의 파격적 관습 타파 행보는 ‘실험결혼론’, ‘정조유린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등으로 이어지고 급기야는 사회적 고립이라는 궁지로 내몰리게 됩니다. 전시회 실패와 사회적 고립으로 폐인이 되다시피 한 그녀는 정신적 안정을 원하며 친구 일엽 스님이 있는 수덕사를 찾게 됩니다.
일엽 스님의 눈에 비친 그녀는 끈끈한 인간적 애정과 여린 감성적 본능으로 인해 출가의 연을 맺기에는 적합지 못함을 충고해줍니다.
목사의 맏딸
일엽 스님의 사랑이
흰 손수건에 묻어 있습니다.
일엽 스님(속명 김원주)은 목사의 맏딸로 기독교계 학교에 다니며 신문학을 접하게 됩니다. 어릴 적 어머니와 동생을 잃은 그녀는 마음의 고통을 ‘동생의 죽음’이라는 신시로 표현했습니다. 그 후 아버지마저 잃고 신앙적 회의를 느낀 그녀는 동경 유학을 통해 일본인 청년 ‘오다 세이조’를 만나지만 ‘오다 마사오(한국 이름 김태신)’라는 사생아를 남기고 이별의 아픔을 뒤로 귀국하게 됩니다.
유학에서 돌아온 그녀는 연희전문 교수인 남편을 중매로 만나지만 의족의 장애인이었던 남편과 결국 파혼에 이르고 나혜석과 함께 ‘자유연애론’, ‘신정조론’을 주장하며 여성운동에 앞장섭니다. 결국 불교의 가르침에 꿈꾸었던 자유와 양성평등의 진리가 있음을 깨닫고, 만공스님을 만나 목사의 딸이면서 비구니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어느 날 문득 찾아온 아들 김태신에게 어머니라 부르지 말고 스님이라 부르라는 냉정한 요구를 통해 찢어지는 아픔을 느낀 아들은 그 후 권위 있는 일본 미술상인 ‘아사히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김일성 초상화를 그린 것으로 이름 나있습니다.
병으로 누워있던 일엽 스님에게 어느 날 노신사가 찾아오고, 일엽을 만나기를 청하고는 말없이 흰 손수건을 얹어 자신의 손으로 일엽의 손을 꼭 잡았는데, 그가 바로 일엽의 첫사랑이었던‘오다 세이조’였습니다.
소설 속 같은 수덕여관의 이야기는 이미 떠나버린 묵객처럼 흔적만 남기고, 빛바랜 사연만이 수덕여관의 복도 끝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풍경소리 그윽한
수덕여관은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을 것입니다.
나혜석이 수덕여관에 머물러 있을 때 많은 젊은이들이 그녀에게 그림을 배우기 위해 왔었는데, 그중 고암 이응노 선생도 함께 했습니다. 고암에게 나혜석은 선배이자 스승이었으며, 예술의 도시 파리에 대한 동경심을 갖게 만들어준 장본인이었습니다.
고암 선생에게 수덕여관은 매력 있는 곳이었고 결국은 그림 공부를 핑계로 여관을 구입하여 부인에게 맡겨 놓고, 서울에서 미술대 교수로 재직하며 21살 연하의 제자 박인경과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프랑스로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건너간 고암 선생은 동양적인 은근한 먹물로 형상 창조 작품을 선보여 국제적인 명성을 떨치게 됩니다.
하지만 북한에 살고 있는 아들을 만나기 위해 윤이상과 방북을 하면서 암울한 그림자가 깃들기 시작합니다. 결국 ‘동백림 사건’으로 연루되어 교도소에서 옥살이를 하게 되고, 1년 뒤 출옥한 고암은 수덕여관 마당에 있는 바위에 암각화를 그리고는 그리운 여인이 있는 파리로 떠납니다.
암각화는 글자 같기도 하고 사람 모양 같기도 한 역동적인 표현이며, 무엇을 그린 것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이며, 영고성쇠(榮枯盛衰)의 모습을 표현했다. 여기에 네 모습도 있고, 내 모습도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다.”라고 했다는 말이 전해집니다.
덕숭산 기슭에 땅거미가 내리면 풍경소리 그윽한 수덕여관에는 나혜석과 일엽 스님,, 고암 선생과 그의 예술적 영혼을 끝없이 사랑했던 박인경의 고암을 향한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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