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남 거제시 장목면 시방리, 장승포항의 북쪽, 시방리 해안 동쪽에는 섬에 섬이 있습니다. 섬의 모양이 대금산을 향하여 날아가는 두루미를 닮아 본래 ‘학섬’이라 불렸으나, 후에 대구의 산란해역으로 알려지고 멸치잡이 권현망이 들어와 마을이 부유해지자 샘물이 넉넉하고 물맛이 좋아 ‘이물 섬’ 즉 ‘이수도(利水島)’로 바뀌었다고 전합니다. -
섬은
떠남의
동의어 인가...
겨울바다에 서면 날 선 파도소리가 어깨 죽지를 후빕니다. 스며드는 한기에 떨려 몸서리 한번 치면 거짓말처럼 지난 일들이 까맣게 잊어집니다. 사소한 다툼, 사랑을 잃은 아픔, 신뢰를 저버린 낙심, 낙엽이 떨어지는 안타까움... 굳이 그해의 마지막 날이면 괜스레 바다를 떠올리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었을까?
갯바위에는 고립, 떠남, 고독, 떨침, 외딴, 이런 단어들이 파도와 함께 눈꽃처럼 부서집니다. 편견은 사랑해야만 할 사람마저도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고 했던가요? 왜 사람들은 떠남에 대한 막연한 생각의 끝을 ‘섬’으로 규정짓기를 원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섬’은 ‘떠남’의 동의어라기보다는 차라리 동반자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섬과 떠남에 대해 객관적 의미의 차이가 존재하는가, 감정적 의미 차이만 존재하는가를 따지는 일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저 배를 타고 어디론가 들어간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사소한 삶에서는 행복 가득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섬으로 가는 배편의 한쪽 벽에 기대서서 먼바다를 바라보면 저 멀리 ‘섬’이, ‘떠남’이 아른거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 수평선 너머 붉은 해가 떠오르고 이제 비었던 가슴속으로 황홀한 새해가 비추어지면 거기에 희망, 들뜸, 환희가 꿈틀거립니다.
물이
사람을 이롭게 한다 하여
‘이물 섬’이라 불렀습니다.
거제대교를 지나 장승포로 가다가 왼쪽으로 돌아서면 하청 장목 길입니다.. 장목에서 바닷길을 끼고 달리면 대금산 자락 아래로 ‘시방’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습니다. 그 마을 바다 건너에 작은 섬 하나 떠 있지요.
섬은 물(水)이 사람을 이롭게 한다 하여 ‘이물 섬’이라고 ‘이수도(利水島)’라 불리는데, 섬을 자세히 드려다 보면 학의 머리처럼 생긴 작은 섬이 대금산을 향해 뾰족하게 튀어나와 있고, 목에 해당하는 자갈길을 거쳐 몸통에 해당하는 부분이 남쪽으로 자리 잡아 두루미처럼 생겼다고, 옛 이름은 ‘학섬’이었습니다. 마을은 두루미목에서 몸통으로 연결되는 곳에 쏙 들어간 만을 따라 약 50여 가구가 언덕을 오르며 모여 살고 있습니다.
섬의 뒤쪽으로는 ‘흰 여’라고 부르는 세 개의 꼬마 섬이 바다에 떠있고, 학의 알처럼 보입니다. 섬은 한때 대구 잡이가 성행해 ‘강아지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풍족해 ‘돈섬’이라고도 했답니다.
마을 한가운데 있는 대금초등학교 이수도 분교는 2004년 문을 닫았습니다. 1940년 장목 공립 심상소학교 부설 이수 간이학교였던 이수도 분교는 1944년 이수 공립학교로 승격해 11 학급으로 정식 개교했습니다. 총 568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이수도 분교는 이제는 이수도 어촌체험마을로 거듭나 있었습니다.
이수도 분교는 마을 사람들의 배움터요, 놀이터요, 마을 행사장이었으며, 그물을 손질하는 작업장이기도 했고, 언덕 위 당산나무 아래 사는 노부부의 남모르는 사랑놀이 흔적이 남은 터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화살을 쏘는 시방
화살을 막는 방패
‘방시순석’
섬을 따라 도는 둘레길을 걷다 보면 어느 듯 숨이 차오르며 ‘고마 등대’에 이릅니다. ‘고마’는 ‘뒤’라는 뜻으로 섬의 뒤쪽 높은 언덕이라고 붙여진 이름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볕이 잘 드는 이곳에서 밭을 일구어 농사를 지었고, ‘곰배등’을 따라 수확한 곡식을 마을로 옮겨왔을 것입니다.
바다 건너 본섬 대금산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시방마을은 이수도로 향하는 바닷가 지형이 활같이 굽어서 이수도 학을 향해 시위를 당겨 화살을 쏘는 형국이라 시방(矢方)이라 지었답니다. 시방에서 이수도를 향해 활을 쏜다는 소리를 들은 이수도는 ‘화살을 막는 방패’라는 의미의 ‘방시순석(防矢盾石)’을 비밀리 마을 뒷산에 세우자, 이수 마을은 점차 번창하고 시방은 이 때문인지 어려움을 겪는 등 마을에 수심이 깊어졌습니다.
어느 날 마을을 지나던 도사가 “이수도는 학섬이고 시방은 활(弓)대인데 활에 살(矢)이 없어 기운을 못 쓰니 화살 쏘는 비석을 세우면 마을이 평안해질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귀가 번쩍 뜨인 시방 사람들은 뒷산에 여러 개의 화살을 연달아 쏘아대는 ‘쇠뇌’를 11만 개나 갖추었다는 의미의 ‘방시만노석(放失萬弩石)’비를 세웠고, 시방은 다시 잘 살게 되었지만 이수도는 고기가 잡히지 않아 어려움을 겪습니다.
이수도 사람들은 화살에 맞아 학이 죽어 운(運)이 모두 나갔다고 불안해했고, 주민들은 시방에서 쇠뇌로 쏘아대는 많은 화살을 막을 수 있도록 바닷가 단단한 차돌로 ‘방시만노순석(防矢萬弩盾石)’을 방시순석 위에 세우면서 두 마을은 아무 탈 없이 더불어 잘 사는 마을이 되었답니다.
‘방시만노순석’이라는 조금은 유아스러운 묘안을 통해 허물어져가는 자신의 마음을 추스를 기회를 얻고, 섬 삶의 겸손함을 배우고, 묵은 상처를 위로받는 환한 새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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