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문간에 선 봄 숲은 일개미처럼 소리 없이 분주합니다. 봄볕 따라 엄청난 계획이 준비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뒤 숲에도, 앞 숲에도, 여기저기 싹 틔우는 소리 요란하지만 정작 숲 속은 고요합니다. 거기에는 오래 참았던 희망, 기대, 놀람, 의연이 있을 것입니다. 도시숲에도 봄은 오지만, 새들이 지저귀는 이 곳만 못합니다. 초록의 녹시율이 낮아 사람들의 발걸음은 자연히 숲으로 향합니다. 놀라운 숲의 변화를 통해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싶은 염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일찍 일어나는 숲
이른 봄 숲은 티끌 하나 걸치지 않은 나목으로, 온 혼을 태우며 땅을 버티고 서서, 몸이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참았던 속을 싹으로 내밉니다. 어린 우리를 잠재우고 꼼꼼히 가계부를 정리하는 어머니 손놀림처럼 가지마다 새순마다 할 일을 적어 봅니다. 하늘이 얼마나 높은가, 작은 가지를 쭉쭉 뻗어 봅니다. 땅이 얼마나 깊은가 뿌리를 가만히 뻗어 봅니다. 평생 하늘을 보고 자라도 그 하늘 다 알 수 없어 나무는 열매를 갓털에 날려 보내봅니다. 가서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알아보고 오라고, 어린 열매의 등을 떠밀어 보냅니다.
꽃샘추위에도 숲은 여여합니다. 몇 송이의 꽃을 피울까? 몇 개의 열매를 달까? 언제 피울까? 언제 달까? 싹들이 나올 문들을 고치고 다듬고, 잘 여닫히나 살핀 뒤 겨울 뒷문에 서서 봄을 기다립니다. 천천히, 문득, 푸른 잎이 되어 마침내 꽃을 피우는 나무는 자신의 몸으로 꽃 피웁니다..
숲으로 이끌다
봄이 오면 사람들은 숲에 들기를 좋아합니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왜 숲으로 옮겨갈까요? 거기에는 쉼이 있고, 편안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무거운 삶의 짐을 모두 내려놓고 쉴 수 있는 공간. 삶의 찌꺼기가 혈관에 걸려 고통스러울 때 숲은 그 고통을 완화시켜주고, 치유의 세계로 이끌어주기 때문입니다.
몇몇 사람들은 숲을 찾는 일을 ‘관광’이라는 낱말로 한정 짓기를 좋아합니다. ‘觀光’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다른 지방이나 다른 나라에 가서 그곳의 풍경, 풍습, 문물 따위를 구경함’이라 기록되어있습니다. 사전적 의미에 빗대어보면 숲을 찾는 일은 그들이 말하는 관광의 의미와는 사뭇 다릅니다. 가끔은 숲의 기묘하고 아름다운 풍광에 젖어 세상일을 잊기도 하지만, 더 깊은 의미는 무거운 나를 내려놓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숲을 보는 시각의 차이
숲은 늘 산림(山林)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끔은 숲 언저리에 오래된 고택과 허물어질 듯 돌담이 이어지기도 합니다. 황토흙 배인 돌담 사이로 걸으면, 돌 틈 사이로 옛이야기가 흘러나옵니다. 돌과 돌 사이는 비록 어설픈 모양새를 가지나, 오랜 세월의 인내로 이미 단단하고 견고해집니다. 돌멩이들은 서로 내어주고, 받아들여 완전해졌기 때문입니다. 사람 사는 세상도 돌담의 지혜를 배웠으면 합니다.
숲은 우리에게 오래 참는 법을 배워줍니다. 침묵과 듣기를 잃는 순간,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나를 앞세우고 남을 하찮은 듯 지배하려 합니다. 상대의 말을 듣기보다 내 이야기에 몰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인 곳은 언제나 소란스럽습니다. 그런 자리에는 주장만 있을 뿐 기다림의 지혜가 들어설 틈이 없습니다. ‘기다림’과 ‘들음’이 없는 세상은 죽은 세상입니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고통이 여기에 있습니다.
마음을 치유하는 숲
숲 속의 나무는 말없이 깊은 생각에 잠겨 그의 팔들을 쭉 펼치고는 커다란 평안의 가지들을 아래로 늘어뜨린 채 우리를 맞이합니다. 우리는 그 아래 서서 미세한 자연의 소리를 듣고, 초록의 이완을 통해 심장의 박동을 늘어뜨리고, 산소의 소비량을 감소시키며, 몰입(flow)으로 빠져듭니다. 나무와 대화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내 마음을 열고 존재의 문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무가 바로 나임을, 내가 나무임을 느끼고 아는 것입니다. 숲을 걷는 일은 내 삶에 귀를 기울여주는 시간이며, 동시에 자기 자신에게 귀 기울이는 시간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향해 들려주는 위로의 말은 이제 우리를 위로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숲을 걸으며 침묵을 통한 내면의 듣기로 인해 오히려 우리는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입니다.
'치유의 숲'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치유의 숲~숲에서 나는 냄새 (2) | 2021.05.19 |
---|---|
치유의 숲~연필이 된 삼나무 (0) | 2021.03.05 |
치유의 숲~오래된 나무와의 만남 (0) | 2021.02.13 |
치유의 숲~마을터줏대감 어르신 (2) | 2021.01.10 |
치유의 숲~나눔의 숲 (0) | 2020.1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