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남 함안군 대산면 장암리, 반구정은 1557년 8월 11일 가야읍 검암리에서 태어나 의병장으로 활약한 두암(斗巖) 조방(趙邦)선생이 지은 것으로, 처음에는 낙동강가의 웃개나루(上浦)에 있었는데 침식작용으로 허물어져 1866년 현 위치로 옮겨졌으며, 문장으로 유명한 성재 허전이 기문을 지어 만들어진 정자입니다. -
봄빛
찾으러
반구정 뜰에 서다
봄은 땅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분주하더니,
어느새 건너 산허리가 연둣빛으로 선명해집니다.
숲 사이로 직박구리 부지런히 날고, 화들짝 피었던 벚꽃 잎이 봄바람에 실려 날아다닙니다. 그 환함과 들뜸에 여기저기 봄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합니다.
햇살 거침없이 머금은 나무마다 꽃잎 화사해지면, 가지마다 휘돌아 다니는 꽃향기에 어질 해집니다.. 봄볕 한 가닥에 휘둘려 세상을 동동 떠서 살고 싶은 철없는 마음, 한적한 숲길 사이로 새소리 들리면, 발걸음은 저절로 들꽃을 찾아 떠납니다.
함안 어딘가에 ‘남바람꽃’이 핀다는 소식을 듣고 ‘반구정’ 뜰을 찾아 발걸음을 옮겨봅니다. ‘반구정’은 함안 용화산 중턱, 옛날 청송사가 있던 곳에 자리했고, 650년 늙은 느티나무 턱 버티고 서있는 육각정자 ‘호기정’에 서면, 확 트인 정자 아래로 펼쳐진 기름진 남지 들판과 낙동강의 굽이치는 절경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잠시 따스한 햇볕 쪼이려 벚나무 아래 벗은 신발 속에 연분홍 꽃잎이 쌓이면 차마 그 신발 신을 수 없는데, 그새 산들바람은 따사로운 햇살과 함께 봄을 흩날립니다.
남바람꽃
가냘픈 몸매가
간들바람에
함안은 남고북저(南高北低)의 지형 탓으로 늘 곱지 않은 눈초리를 받아 옛날에는 귀향지였고, 빈번한 강의 범람으로 함안 사람들은 흐르는 물이 곧 근심이었습니다. 하지만 같은 물도 양반들에겐 풍광의 즐거움을 주어 물길 따라 지어진 정자는 둘레의 숲과 어우러져 고운 수채화입니다.
‘반구정(伴鷗亭)’은 하늘을 나는 갈매기와 짝해서 여생을 느긋하게 살고 싶다는 의미로 조선시대 충절신 두암(斗巖) 조방(趙邦)선생이 이곳에서 십리 떨어진 ‘말바위’에 정자를 지었다가 이제는 허물어져 다시 지금의 터로 옮겼다고 합니다.
두암은 어계 선생의 현손으로 임란 때에는 곽재우 선생과 함께 화왕산성(火旺山城)에서 의병을 일으켜 그 충과 효에 대하여 탄복하지 않은 이가 없었습니다. 임란 후 그 공을 기리어 나라에 표창을 올리고자 했으나 아들을 불러 그 소원문을 뺏고 “신하가 나라를 위해 충성하고 자식이 부모에 효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표창이 무슨 말인가?”라고 하며 말렸다고 합니다.
반구정은 함안 IC에서 동쪽으로 산인면을 향하여 1021번 도로를 따라간 뒤 대산면사무소를 지나 장암리 입사 마을로 들어갑니다. 마을의 가장 안쪽을 지나면 약간 경사진 임도가 나타나고 3Km 정도 오르면 ‘반구정’이라 적힌 표시 돌이 보입니다.
표시 돌 아래로 향하는 내리막길에는 미나리냉이의 해맑은 얼굴과 남바람꽃 가냘픈 몸매가 간들바람에 어우러져 흔들거립니다.
할머니를 향한
그리움
선화지허
선조 25년(1592년) 5월 4일에 있었던 ‘기음강전투’는 임진왜란이 터진 지 21일 후의 싸움이었고 조선군의 첫 승리였습니다. 곽재우 장군은 남강과 낙동강의 합류지점인 이 곳 ‘기음강’ 속에다 말뚝을 박고 물 위로 사람들을 다니게 하여, 강 건너에서 이 모습을 본 왜군이 수심이 깊지 않은 강이라 착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곽재우 장군의 지혜에 속아서 한 밤중에 강을 건너던 왜군이 급류에 휩쓸려 많은 군사가 죽었다는 이야기가 아직도 전해 내려옵니다..
유유히 흐르는 기음강가 용화산 기슭은 지금은 나른한 봄빛으로 잠들어 있습니다. 느티나무 새순으로 뜰아래는 연두 빛 봄이 환하고, 반구정 늙은 기와에 걸린 흰 구름 아래 애처로운 남바람꽃이 그득합니다.
뜰은 봄의 향연으로 눈부신데 꾸부정한 허리의 노인이 발걸음을 죽이며 걷고 있었습니다. 두암 선생 후손인 조성도 할아버지의 발걸음은 늘 조용했으며, 더없이 사랑했던 할머니의 그리움으로 그의 발걸음은 숙연하기까지 합니다. 할머니는 무척 인정이 많은 분이어서, 반구정을 찾는 나그네를 위해 늘 따뜻한 물과 차를 준비하셨다고 하지요
할아버지의 거처 뒤 작은 텃밭에는 선화지허(仙化之虛)라는 비석이 있고 텃밭에서 일하다가 곡괭이를 치켜든 채로 돌아가신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시’가 검은 돌에 새겨져 있습니다.
세상사는 동안
베풀기 좋아하고
검소하며 한없이
착했던 그 사람
마지막 최선을 다하고
돌아가던 그 순간
나는 산천이 찢어지도록
부르짖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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