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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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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 걷기~마에다 삼림 숲길을 걸으며 코로나19로 인한 긴급조치가 해제되면서 공원으로 가는 길이 열렸습니다.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지 발걸음이 가벼워집니다. 삿포로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들판에는 '마에다 삼림공원'이 있습니다. 단정하게 잘 가꾸어진 삼림공원으로 가는 길목에는 주말농장을 가꾸는 주민들의 얼굴이 건강해 보입니다. 1982년부터 10년에 걸쳐 만들어진 공원은 삿포로시를 녹지로 둘러싸고자 하는 의도에 따라 고향의 숲, 만남의 숲, 들새의 숲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자작나무, 흑송, 마가목, 해당화, 수수꽃다리, 등나무가 무성한 공원은 테이네 산을 향해 똑바로 뻗어 있는 전체 길이 600m, 폭 15m의 운하와 240그루의 포플러가 끝없이 늘어서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냅니다. '테이네'는 아이누어로 '젖어있는 곳(습지)'를 뜻하는 '테..
삿포로 걷기~수수꽃다리가 한창인 오도리 공원을 걸으며 삿포로의 '코로나19'는 걷는 걸음도 잠시 멈추게 합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묶였던 밀접 활동 억제가 이제나저제나 풀리는가 했는데 여태껏 어려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이 계속되면 우리 환경도 언택트 사회로의 진행이 빨라져 개인화가 급속해질 것 같습니다. 페르소나(persona)현상이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게 되고, 미래의 일을 미리 보여주는 플래시포워드(flashforward) 효과가 생기게 되면서 점점 인간적 정서는 메말라 갈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오도리 공원을 걸으며 생각해봅니다. 삿포로 번화가의 가운데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오도리(큰길) 공원은 겨울에는 눈꽃축제, 5월이 오면 각종 축제로 떠들썩 하지만 지금은 '코로나19'로 한산합니다. 오도리는 수수꽃다리..
삿포로 걷기~마루야마 공원을 걸으며 마루야마 공원에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흰 눈으로 덮여 다시는 올 것 같지 않았던 봄이 어느덧 와 있습니다. 겨우내 흰 눈으로 덮여있던 이 곳은 어린아이의 아장아장 걷는 걸음 사이로 파릇한 새싹이 돋아납니다. 아이는 아랑곳없이 뒤뚱거리지만 한 번도 새싹을 밟지 않았습니다. 아마 갓 나온 새싹을 염두에 둔 조심스러운 걸음이었나 봅니다. 흰옷 입은 자작나무 사이로 아름드리 계수나무에 새순이 틉니다. 이 계수나무의 잎이 무성해지면 공원은 온통 초록의 향연이 펼쳐질 것입니다. 가문비나무 아래 청설모 한 마리가 한가히 솔방울을 갉고 있습니다. 저 부지런한 입놀림에 내일 아침은 공원의 솔방울이 모두 없어질 것만 같습니다. 천천히 숲길을 돌아서면 작은 연못이 나무 그림자를 가득 안았습니다. 석양빛이 비친 물결 ..
삿포로 걷기~시오야 마루야마 숲길을 걸으며 생각이 많은 사람은 골똘한 집중력 때문에 스스로 '생각의 늪'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가까운 사람 중에도 평소 생각이 많아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이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매우 불편한 표정을 짓습니다.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 많은 시간을 소모했기 때문에 상대를 배려하기보다는 오히려 엄격한 잣대로 상대의 마음을 재거나 다그치기도 합니다. 사유의 골에 깊이 빠져 잠시 자신의 모습을 잃고 시각이 좁아진 것이겠지요. 집중력이나 영재성이 엿보이는 모습이긴 하지만 오히려 가까운 사람들을 힘들게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잠시 눈길을 딴 데로 돌려 한눈을 파는 여유를 가지거나, 숲길을 천천히 걸으며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면 몸도 마음도 한결 느슨해집니다. 요즘 ..
삿포로 걷기~미아노모리 삼각산 걷기 높은 산의 정상을 오르면 종종 짜릿한 쾌감을 얻기도 합니다. 어려운 난관을 극복했다는 자신감과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자신만의 우월감이 왜소했던 마음을 부풀게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이런 까닭으로 많은 사람들은 더 높은 산의 정상을 향해 무리한 발걸음을 내딛을 때가 많습니다. 낮은 산은 낮은대로 또 다른 즐거움이 있습니다. 나지막한 숲길을 걸으면 강한 성취욕과는 다른 편안한 마음의 위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위로는 곧 근심의 어루만짐입니다. 근심은 갈길을 잃고 헤매는 영혼에 꼭 찾아드는 마음의 응어리이지요. 우리 마음속에 찾아오는 근심은 흉한 모습을 한 물질의 형상이 아니라, 그에 관해 우리가 사유하는 왜곡된 생각으로부터 비롯됩니다. 근심을 불러일으키는, 모호한 부정적 생각으로부터 유발되는 '나쁜..
삿포로 걷기~시코츠 호수의 흰머리오목눈이 내 이름 석자에는 '仁'이란 글자가 있습니다. 사람 '人'에 두 '二'를 더한 글자. 풀이하면 '마음 씀씀이가 야박하지 않고 어질거나, 세상의 모든 것을 한 몸으로 여기고 베푸는 마음 혹은 그러한 행위'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仁'이라는 한자 때문인지는 몰라도 지금껏 세상살이를 내 본성과는 달리 힘들게, 불편하게 살아온 것 같아 지금에 와서는 뭔가 손해를 본 듯한 느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어릴 적부터 이름대로 살아야 한다는 의무감, 속박감 때문에 남의 부탁을 매정하게 뿌리치거나, 크게 모난 짓을 할 수 없었던 기억. 물론 상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시코츠호를 걸으며 이제는 내 멋대로 살아보고 싶은 마음에 이것 저것 새로운 생각과 계획을 세우지만, 둘레의 화산으..
삿포로 걷기~모에레누마 공원 걷기 사람은 어쩌면 홀로 떨어진 섬과 같은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삶을 통해 외로움과 고독을 가슴 한구석에 가지고 있는 존재... 섬에 향기가 나면 사람들은 그 섬을 찾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멀리 떨어진 섬일수록 좋은 향기를 품어야겠습니다. 홋카이도는 그런 면에서 사람의 마음을 이끄는 섬인 것 같습니다. 나라와 이념을 떠나 누구나 한 번쯤 와보고 싶어 하는 곳. 하지만 이 곳에도 아픈 흔적은 있습니다. 삿포로시 히가시구 '모에레누마'에는 '육지의 섬'같은 곳이 있습니다. 이 곳은 서울의 '난지도'처럼 오래전 악취가 나서 아무도 찾지 않는 쓰레기 처리장이었지만, 지금은 많은 도시민이 즐겨 찾는 아름다운 공원으로 바뀌었습니다. 아주 옛날 아이누족이 살던 이 곳은 맑은 물이 유유히 흘러 'Shinoro Ne..
삿포로 걷기~모이와 원시림을 걸으며 산을 오르는 것은 함께 보다는 혼자 걷는 즐거움이 더 큰 것 같습니다. 걷는 동안 자신의 의지와 자유를 스스로 깨닫게 되고, 숲길을 걸으며 자신과의 대화에 빠져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딘가를 오르는 일은 곧 다가오는 지침, 피로, 좌절, 고통과 싸워야 합니다. 오르고자 하는 욕망에 비해 그 욕망으로 생긴 피로와 고통을 끝내고자 하는 욕구가 때로는 더 강하게 밀려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어려움에 대해 극복하는 법을 숲을 통해 배우게 됩니다. 피로와 고통을 이기는 법은 목적에 매몰되지 말고, 걷는 둘레의 자연을 그냥 즐기는 일입니다. 나는 다음 순간 숨을 내쉬며 더 멀리, 더 높이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모이와산은 삿포로의 거의 중앙에 위치하는 해발 531m의 나지막한 산입니다. 아이누어로는 ..